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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령 국제회의 동시통역사/대학교수] 입과 귀로써 역사적 현장을 거닐다 통번역이라는 일을 삶으로 담금질하다. 2023-07-27
KHRD info@khrd.co.kr

▲ 임종령 통역사는 32년째 활동 중인 베테랑이며 교수로도 21년째 재직하며 통번역계 인재육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국내외 정재계 최정상들이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로 대담을 나누는 역사적 현장에서 30년 넘게 입과 귀로 살아온 베테랑이 있다. 바로 임종령 국제회의 동시통역사다.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제1호 동시통역사인 그는 탁월한 준비성, 전문성, 유연성, 사명감을 발휘해서 수많은 통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해왔다. 그에게 일은 곧 삶이었고 나아가 차세대 통번역계 인재들을 키우는 교육도 아우르게 됐다. 그런 만큼 임종령 통역사가 걸어온 길엔 역량개발 측면에서 인사이트가 가득했다.



국제회의에는 정부, 기업체, 각종 단체 사이의 회의, 학회, 컨퍼런스, 기자회견, 정상회의 등 여러 형태가 있고 외교, 친목, 교류, 입법 등 목적도 매우 다양하다. 발화자의 말을 실시간으로 받아 적어 통역하는 ‘순차통역’, 이동하면서 귓속말로 통역하는 ‘수행통역’, 실시간으로 통역하는 ‘동시통역’ 능력을 갖춘다면 국제회의 통역사로 인정받는다. 위 능력을 모두 갖췄기에 임종령 통역사는 32년째 활동할 수 있었고, 교육에도 관심이 많았던 만큼 서울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교수로도 21년째 재직하며 통번역계 인재육성에도 힘쓰고 있다.



▲ 방콕에서 개최된 제35차 아세안 정상회의에 참여한 임종령 통역사의 모습.



동시통역사로서 처음 그의 목소리가 오디오에 담겼던 순간은 지난 1990년 8월 발발한 걸프전 CNN 동시통역 생중계다. 통번역대학원 졸업 후 처음 맡은 과업이었지만 사전예고가 없었기에 다급하게 길을 나섰고 빠르게 걸프전 관련 기사들을 읽으며 통역 세계에 뛰어들었다. 기진맥진했지만 무사히 일을 마쳤고, 선배로부터 잘했다는 피드백도 받았으나 흡족하지 않았다. ‘더 잘 해낼 수 있었다’는 마음에서였다. 이후 그는 삶을 리셋했다. 세상의 변화를 사전에 살피며 매일 공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뉴스를 보고 신문을 정독하며 영어뉴스를 번역하는 일을 이어오고 있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나서는 다음날 사용할 통역 자료를 꼭 검토합니다.”라는 임종령 통역사의 말에 무게감이 남달랐던 이유다.



▲ 아프리카 순방 확대 정상회의에서 임종령 통역사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발언을 통역하고 있다.



원활한 의사소통은 평면적 이해를 넘어 맥락을 해석해야 가능하다. 그래서 임종령 통역사는 다양한 산업에서 쓰이는 전문용어, 각종 배경지식, 국제회의를 수놓는 인사들의 상황과 사회적 맥락 등을 끊임없이 학습한다. 이런 준비성에 더해 임종령 통역사는 “일을 잘 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것이 가끔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제게는 더 넓고 깊은 세상을 만나는, 더없이 충만하고 또 행복한 시간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일이 곧 삶인 임종령 통역사는 작년에 서거한 엘리자베스 여왕, 닥터 둠 누리엘 루비니 교수, 경영 구루 피터 드러커 학자 등을 비롯해 국내외 최정상들의 통역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시체 안치실, 수술실, 포스코 제철 용광로 등 낯선 공간도 임종령 통역사에겐 배움을 즐기는 곳이다. 그는 그간의 경험을 곱씹으며 기억에 남는 순간을 다음과 같이 털어놨다.


“레이 맨시니 전 미국 권투선수의 방한 기자회견이 생각납니다. 사전에 김득구 전 국내 권투선수를 소재로 한 영화 ‘챔피언’을 봤었는데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김득구 선수의 죽음으로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려 왔고, 그런 자신을 포용해주고 말없이 안아주던 김득구 선수의 가족과 한국인들의 따뜻한 마음에 감사하다고 말하며 용서를 구하는 레이 맨시니 선수의 태도에서 감동했습니다.”


통역은 발화자의 마음에 밀접하게 다가가서 복잡하고 미묘한 언어의 뜻을 정확하게 풀어내는 일이다. 그래서 임종령 통역사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 태도를 각별하게 강조한다.



▲ 대통령 아시아 순방 때 MOU 서명식 MC를 보기 직전 임종령 통역사의 모습이다.



“말은 상황에 따라 어느 방향으로든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선 ‘역삼역’, ‘기러기’, ‘토마토’, ‘별똥별’, ‘스위스’ 등 앞뒤가 똑같은 단어가 대사에 많이 나오죠. 이것을 그대로 번역하면 의미가 잘못 전달됩니다. 그리고 ‘You are the best’는 ‘너는 최고야’가 아니라 ‘너 잘났어’가 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통역사는 상황의 맥락과 사람의 감정까지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연사가 화를 내면 같이 화를 내고, 연사가 울먹거리면 함께 동요하는 감성이 필요하고, 중요합니다. AI 번역기술의 경우 방금 말씀드린 상황의 맥락을 유추하고, 공감하는 부분에서 부족함이 있습니다. 통역사는 회의 분위기, 연사들의 감정 상태, 말의 뉘앙스를 잘 파악하는 눈치와 요령이 요구되는 직업입니다. 그래서 AI 번역본을 검토해서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제 직업에 위기가 닥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거리가 늘어난 셈이죠.”


임종령 통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동시통역 부스에서 발화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유려하게 통역하는 순간 충만감과 행복을 느낀다. 남북정상회담, 한미정상회담, 다양한 통상협상 등 현대사의 굵직한 장면이 매끄럽게 지나가도록 힘을 보탰을 때는 더 없을 성취감이 솟아난다. 물론 겸허함도 잊지 않는다.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아쉬움 가득했던 순간들도 있었던 만큼 겸손한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통해 사람은 어제보다 더 성숙한 존재가 되며, 이것이야말로 일에서 얻는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메시지도 전해줬다.



▲ 임종령 통역사가 자신의 일이자 삶이 펼쳐지는 공간인 동시통역 부스를 가르키며 미소를 짓고 있다.



끊임없는 담금질로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바꾼 임종령 통역사. 그의 삶은 하나의 학습자료와도 같았다. 많은 직장인이 행복을 갈구하지만 동시에 성공도 바란다. 이들에게 임종령 통역사는 “오늘 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간절히 원하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습관을 만든다면 성공과 행복이 다가올 겁니다.”라는 제언을 건네며 인터뷰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