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검색
Top
메뉴 닫기

주소를 선택 후 복사하여 사용하세요.

뒤로가기 새로고침 홈으로가기 링크복사 앞으로가기
전희철 감독의 분노가 드러낸 프로페셔널리즘의 조건 2026-02-02
KHRD info@khrd.co.kr

https://youtu.be/w1lR6ppH2_M?si=34Dh27QoOJkfNYVc




'합리적 포기'의 착각

어느 농구 감독의 분노와 직장인의 '효율성'

최근 프로농구 경기 중, 서울 SK 나이츠의 전희철 감독이 작전 타임에서 영상과 같이 분노를 터뜨린 장면이 화제가 됐다. 점수 차가 크게 벌어져 지고 있는 상황에서 선수들이 수비와 리바운드 같은 기본적인 플레이를 소홀히 하자 그는 이렇게 외쳤다.




"경기가 안 풀리면 그냥 안 해버리는 거야?"

작전 타임 동안 선수들은 고개를 떨군 채 입을 내밀거나 인상을 쓰고, 벤치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감독의 분노는 단순히 경기 흐름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라기보다, '프로라면 지켜야 할 태도'가 무너지는 장면을 목격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장면은 코트 밖의 직장인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상사의 피드백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힘을 빼고 기획안을 가져오는 팀원, 성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며 '리소스 절약'을 명분으로 몰입을 유보하는 실무자의 모습이 겹쳐 떠오르기 때문이다.

요즘 이러한 태도는 흔히 '합리성'과 '효율성'이라는 말로 설명된다.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취할 가치가 있는 것에만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선택의 논리다. 그러나 리더의 시선에서 이른바 '합리적 포기'는 단순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과정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내려놓겠다는 선언이며, 조직이 개인에게 기대하는 프로페셔널리즘의 토대를 흔드는 신호일 수 있다.

전희철 감독의 분노와 우리가 조직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이 갈등은 단순히 세대 차이나 감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효율을 판단하는 기준과 프로로서 수행해야 할 역할에 대한 인식이 어디에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결과 중심 사고가 낳은 과정의 공동화(空洞化)



선수들은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을 '이미 승패가 결정되어 더 이상 의미를 찾기 어려운 시간'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감독에게 그 시간은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다. 다음 경기를 대비한 전술 실험의 장이자, 선수 개개인의 근성과 태도를 점검하는 테스트이며, 무엇보다 돈을 내고 경기장을 찾은 팬들 앞에서 끝까지 책임을 수행해야 하는 '프로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단순한 태만이나 집중력 저하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이 바로 과정의 공동화다.

과정의 공동화란, 결과가 불리해지는 순간 수행 그 자체의 의미를 스스로 제거해 버리는 조직적인 태도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 현상은 조직에서도 낯설지 않다.




"어차피 수정될 기획안이니 힘 뺄 필요 없어서요"라는 팀원의 말에는 악의보다 계산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계산은 철저히 결과물에만 매몰되어 있다. 리더에게 기획안을 수정하는 과정은 단순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절차가 아니다. 그 과정에는 팀원의 사고 구조를 점검하고, 조직의 맥락을 학습시키며, 장기적으로는 '더 큰 일을 함께 맡길 수 있는 사람인가'를 판단하는 중요한 관찰 구간이다.

과정을 생략하는 효율은 단기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이 반복될수록 조직에는 보이지 않는 균열이 쌓인다. 결국 그 대가는 조직 내 신뢰 자산의 고갈이라는 형태로 되돌아온다.

합리성의 오해: 태도는 비용이 아니라 '데이터'다



요즘 조직에는 말하는 합리성은 대체로 ROI의 언어로 설명된다. 투입 대비 산출이 불분명한 구간에는 노력을 최소화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판단이다. 이 계산은 단기적으로는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프로의 세계에서 모든 중요한 판단이 눈에 보이는 성과만으로 내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프로의 세계에서 '태도'는 휘발되는 비용이 아니다. 그것은 리더가 다음 결정을 내리기 위해 참고하는 가장 중요한 데이터다.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진 상황에서도 끝까지 수비에 집중하는 선수를 보며 감독은 '위기 상황에서도 믿고 맡길 수 있는 카드'를 발견한다. 여러 차례 수정될 것을 알면서도 기획안의 논리와 디테일을 끝까지 챙기는 팀원을 보며 팀장은 '더 큰 권한을 위임할 수 있는 파트너'를 떠올린다.

즉, 과정에 몰입하는 태도는 성실성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리더가 미래의 선택을 하기 위해 축적하는 신뢰 데이터다. 이를 하기 싫어 '짜치는 과정'이라 냉소하는 순간, 구성원은 효율을 선택하는 대신 스스로 자신의 성장 가능성과 기회를 포기하게 된다.

리더의 분노는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전희철 감독의 분노가 정당성을 얻는 지점은 그것이 단순한 감정 표출이 아니라, 무너진 기준을 다시 세우는 행위였다는 데 있다. 리더는 구성원이 '합리성'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프로로서의 정체성을 방기할 때,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단호해질 필요가 있다.

물론 현대 조직에서 분노 그 자체는 쉽게 오해를 낳는다. 그래서 리더에게 더 중요한 것은 감정의 강도가 아니라 분노가 향하는 방향이다. 리더의 분노는 누군가를 몰아붙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행동이 왜 용납될 수 없는지에 대한 맥락을 명확히 하는 신호여야 한다. 다시 말해, 리더의 분노는 감정으로 소비될 것이 아니라 기준의 언어로 정리되어야 한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은 메시지로 전달해야 한다.




과정도 성과다

: 오늘의 패배와 시행착오 속에서도 무엇이 관찰되고, 어떤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는지를 분명히 하라.


태도는 기록된다

: 지금의 무성의함이 향후 신뢰와 선택권에 어떤 제약으로 작용하는지 명확히 알려라.


관계가 일을 만든다

: 일은 계약으로 시작되지만, 성장은 반복된 수행과 태도 속에서 형성된 신뢰로 완성된다는 점을 강조하라



과정을 평가하지 않는 조직은 결과만을 요구하게 되고, 결과만을 요구하는 조직은 결국 그 결과조차 통제하지 못한다.

맺으며

다시, '프로페셔널리즘'을 묻다



전희철 감독은 "감독이 수비하라고 말도 못 하냐"고 일갈했다. 이 말은 리더십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발언이 아니다. 점수 차와 무관하게 끝까지 수행해야 하는 프로의 기준이 무너졌음을 선언한 순간이었다. 효율과 합리성이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역설적으로 '과정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은 더욱 희소한 가치가 된다.

팀원이 "어차피 수정될 텐데 적당히 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업무 태도의 문제가 아니다. 그 말은 게으름의 고백이 아니라, 이 과정이 나와 리더의 신뢰 관계를 쌓는 자리라는 사실을 거부하는 태도다. 자신의 커리어를 장기적인 성장의 관점에서 관리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선택이다. 과정에 투자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결과 이후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리더는 그 지점에서 물러서서는 안 된다. 불편함을 감수한 단호한 피드백은 감정의 발산이 아니라 기준의 전달이며, 통제의 욕구가 아니라 성장의 책임이다. 프로페셔널리즘은 결과로 증명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언제나 과정에 대한 태도다. 그 기준을 끝까지 지켜내는 것, 그것이 구성원을 진정한 프로로 성장시키는 리더십이 끝까지 지켜야 할 마지막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