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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6-09 10:10:00
  • 수정 2026-06-09 1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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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은 늘 바쁘다. 구성원들은 하루 종일 분주하다. 그런데 퇴근할 때 이런 의문이 남을 때가 있다. “오늘 정말 중요한 일을 했나?”

최근 산업통상부의 ‘가짜일 줄이기 프로젝트’는 이 질문을 조직문화의 의제로 끌어올린 사례다. 산업부는 2026년 4월 24일 정부세종청사 대강당에서 장관 주재 제2차 전 직원 타운홀미팅을 열고, 지난해 11월 이후 추진한 ‘가짜일 줄이기 프로젝트’의 성과와 향후 과제를 공유했다. 산업부 발표와 보도에 따르면 조직문화와 업무 관행이 개선됐다고 응답한 직원은 53%, 부정 응답은 18%였다. 산업부는 행사 준비 간소화, 보고 효율화, 스크랩·홍보 개선, 중복 업무 통폐합, 외부 대응 최적화, 대기성 야근 근절을 주요 개선 분야로 제시했고, ‘가짜일 신고센터’를 통해 발굴한 24건의 참여형 개선 과제도 공유했다.


이 사례는 단순히 “일을 줄였다”는 데 의미가 있지 않다. 조직문화는 거창한 가치 선언보다 구성원이 매일 경험하는 일의 방식에서 먼저 바뀐다. 회의 하나가 사라지고, 보고서 한 장이 짧아지고, 퇴근 직전의 대기 지시가 줄어들 때 구성원은 비로소 “문화가 바뀌고 있다”고 느낀다.

가짜일 줄이기는 업무 효율화 프로젝트가 아니다. 조직이 무엇을 성과로 인정하는지, 구성원의 시간을 어떻게 대하는지, 리더가 통제와 신뢰 중 무엇을 선택하는지 보여주는 문화 개입이다. 가짜일을 줄이는 출발점은 일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지금도 쓰이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가짜일은 성실한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가짜일은 게으른 사람이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매우 성실한 얼굴을 하고 나타난다. 더 촘촘한 보고, 더 정교한 회의 자료, 더 긴 결재 라인, 더 빈번한 현황 공유, 더 많은 참조 메일의 형태를 띤다. 그러나 그 일이 의사결정, 고객 가치, 국민 편익, 현장 개선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짜 일이 아니라 조직 내부의 불안을 달래는 활동일 수 있다.

가짜일은 주로 불신, 책임 회피, 보여주기 문화에서 자란다. 구성원을 믿지 못하는 조직은 증거를 요구한다. 상사는 보고서를 통해 안심하고, 구성원은 보고서를 통해 자신이 일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결정을 내려야 할 사람이 결정을 미루면 실무자는 자료를 더 만든다. 리스크를 감당하기 어려운 조직일수록 보고서는 두꺼워지고 회의는 반복된다. 기여보다 노력의 흔적이 인정받는 조직에서는 구성원이 “일을 잘한 사람”보다 “바빠 보이는 사람”이 되려 한다.

대기성 야근은 이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일이 있어서 남는 것이 아니라 언제 호출될지 몰라 남는다. 이때 긴 근무시간은 결과가 아니라 충성의 표시가 된다. 따라서 가짜일은 개인의 시간 관리 실패가 아니다. 조직이 신뢰를 어떻게 다루는지, 결정을 어떻게 내리는지, 무엇을 인정하고 보상하는지의 결과다.

가짜일은 누군가에게 안전장치다

가짜일은 모두에게 쓸모없는 일이 아닐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통제감을 주고, 누군가에게는 책임 회피의 안전장치가 되며,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 된다. 상사는 보고서를 받아야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느낀다. 의사결정자는 회의를 한 번 더 열어야 충분히 검토했다고 느낀다. 실무자는 자료를 더 만들어야 자신이 일을 했다는 증거를 남길 수 있다고 느낀다. 이런 조직에서는 가짜일이 합리성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 일을 없앴을 때 누가 불안해지는지까지 봐야 한다.

그래서 가짜일 제거는 단순한 효율화가 아니라 변화관리다. 회의를 없애는 일은 시간을 줄이는 일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통제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보고서를 줄이는 일은 문서량을 줄이는 일이면서 동시에 책임을 나누는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대기성 야근을 없애는 일은 근무시간을 줄이는 일이면서 동시에 충성의 표현 방식을 바꾸는 일이다.

조직문화 담당자가 가짜일을 다룰 때 저항을 예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짜일은 비효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오래된 조직의 안정장치이기도 하다.

반복 업무와 가짜일은 다르다

가짜일을 줄이자고 하면 한 가지 오해가 생긴다. 회의, 보고, 기록, 취합, 검토를 모두 줄여야 한다는 식의 반응이다. 그러나 모든 반복 업무가 가짜일은 아니다. 모든 보고가 낭비도 아니다. 공공조직과 대기업에는 필요한 절차가 있다. 기록은 책임성을 높이고, 보고는 의사결정을 돕고, 검토는 리스크를 줄인다. 안전, 법무, 재무, 인사, 정책 업무에서는 절차 자체가 결과의 품질을 좌우하기도 한다.

가짜일은 처음부터 나쁜 일이 아니었을 수 있다. 한때는 필요한 보고였고, 필요한 회의였고, 필요한 취합표였을 수 있다. 다만 사용자가 사라졌고, 결정에 쓰이지 않게 됐고, 아무도 폐지하지 않았을 뿐이다.

핵심은 절차의 존재가 아니다. 목적이 사라진 뒤에도 일이 계속되는 상태다. 보고서를 받는 사람이 바뀌었는데도 양식은 남고, 회의에서 더 이상 결정할 안건이 없는데도 일정은 반복된다. 한때 필요했던 취합표가 아무도 보지 않는 파일이 됐는데도 담당자는 매주 업데이트한다. 이때 일은 관리가 아니라 의례가 된다.

가짜일을 구분하는 기준은 “반복되는가”가 아니다. 기준은 “쓰이는가”다. 보고서의 사용자가 없으면 보고서는 기록이 아니라 의례가 된다. 회의의 사용자가 없으면 회의는 협업이 아니라 출석 확인이 된다.

회의를 없앴더니 결정이 선명해졌다

한 팀은 매주 월요일 오전에 열던 90분짜리 정기회의를 없애보기로 했다. 회의는 원래 업무 공유를 위한 자리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 한 주간 할 일을 읽고, 팀장이 몇 가지 코멘트를 덧붙이고, 별다른 결정 없이 끝나는 형식이 됐다. 참석자들은 “공유를 위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회의 후 달라지는 일은 많지 않았다.

4주 동안 회의를 없애고 세 가지 원칙만 남겼다. 공유만 필요한 내용은 금요일 오후까지 문서로 올렸다. 회의는 결정이 필요한 안건이 있을 때만 열었다. 회의를 열 때는 “결정할 것”을 안건 맨 위에 썼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회의 시간이 줄었지만 정보 공유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사전에 올리는 문서가 짧아졌고, 팀원들은 회의에서 말할 내용을 준비하느라 쓰던 시간을 줄였다. 회의가 열릴 때는 논의가 더 빨리 결정으로 이어졌다. 이 사례의 핵심은 회의 시간을 줄였다는 데 있지 않다. 가짜일을 줄인다는 것은 일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일의 쓰임을 분명히 하는 일이다.

가짜일을 진단할 때 봐야 할 것들

가짜일을 진단하려면 먼저 산출물의 최종 사용자를 확인해야 한다. 보고서, 회의록, 취합표, 정기 공유 자료를 누가 쓰는지 봐야 한다. 사용자가 불분명하다면 그 일은 이미 의례가 됐을 가능성이 있다.


다음으로 빈도를 봐야 한다. 최근 한 달 동안 몇 번 수행했는지 확인해야 한다. 오래전에는 자주 필요했지만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는 업무가 관행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세 번째는 판단 수준이다. 담당자가 직접 판단하는 일인지, 정해진 양식을 처리하는 일인지 구분해야 한다. 판단이 거의 없는 반복 처리 업무라면 자동화, 통합, 폐지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

네 번째는 기여 방식이다. 그 일이 어떤 의사결정을 돕는지, 어떤 실행을 빠르게 하는지, 고객이나 국민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 연결이 약하면 일은 바쁘게 보이지만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다섯 번째는 리스크다. 없애거나 줄였을 때 실제로 어떤 위험이 생기는지 봐야 한다. 막연한 불안과 실제 리스크는 다르다. “혹시 모르니까”라는 말만으로 유지되는 일은 재검토해야 한다.

마지막은 숙련 차이다. 잘하는 사람과 평균 수행자의 행동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해야 한다. 숙련 차이가 거의 없다면 그 업무는 중요한 역량 업무가 아니라 표준화 가능한 처리 업무일 수 있다.

가짜일 진단은 “누가 불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가”를 찾는 과정이 아니다. “어떤 관행이 쓰임을 잃었는가”를 찾는 과정이다. 사람을 의심하는 일이 아니라 일의 사용처를 확인하는 일이다.

가짜일을 말할 수 있어야 문화가 바뀐다

가짜일을 줄이는 조직에는 공통점이 있다. 구성원이 불필요한 일을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많은 조직에서 이 말은 위험하다. “이 회의가 꼭 필요합니까?”라는 말은 협조성이 부족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쓰입니까?”라는 말은 상사의 지시를 문제 삼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이 업무는 중복입니다”라는 말은 다른 부서와의 갈등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신고 채널이 아니다. 가짜일 제기 면책권이다. 구성원이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자고 말했을 때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 문제 제기자를 예민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개선 기여자로 인정해야 한다.

산업부가 ‘가짜일 신고센터’를 통해 24건의 참여형 개선 과제를 발굴했다는 점은 이 맥락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이런 장치가 지속되려면 제안한 사람이 보호받고, 제안이 검토되며, 검토 결과가 다시 공유돼야 한다. 그래야 구성원은 “말해도 되는구나”라고 느낀다. 심리적 안전감은 좋은 분위기가 아니다. “이 일은 줄여도 됩니다”라고 말했을 때 불이익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다.

프로젝트도 또 다른 가짜일이 될 수 있다

가짜일 줄이기 프로젝트에는 역설적인 위험이 있다. 프로젝트 자체가 새로운 가짜일이 될 수 있다. 가짜일 감축 실적 보고, 우수사례 발표 자료, 개선 과제 관리 회의가 과도하게 늘어나면 본래 취지와 반대로 일이 늘어난다.

따라서 가짜일 줄이기 프로젝트는 새 보고를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일을 실제로 줄이는 방식이어야 한다. 측정은 단순해야 하고, 줄인 일이 다른 이름으로 다시 생기지 않도록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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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문화는 일의 방식에서 바뀐다

가짜일을 줄이는 일은 덜 바쁜 조직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조직의 시간을 진짜 기여에 쓰도록 되돌리는 일이다. 구성원은 조직문화 선언문을 보고 문화를 믿지 않는다. 자신이 매주 참석하던 회의가 사라졌을 때, 아무도 읽지 않던 보고서가 폐지됐을 때, 퇴근 직전 대기 지시가 줄었을 때 문화를 체감한다.


조직문화는 말보다 일의 방식에서 먼저 바뀐다. 가짜일을 줄이는 출발점은 간단하다. 내가 하는 이 일은 지금도 쓰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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