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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2-07-11 13:3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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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경악할 만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과학수사는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서래마을의 영아 살해 사건, 강호순 연쇄 살인 사건, 숭례문 방화 사건, 김길태 부산여중생 살인 사건 등 과학수사력으로 미궁 속에서 건져 올린 사건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우리는 지난 2006년 프랑스인들의 밀집지역인 서초구 서래마을에서 일어난 영아 살해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당시 국과수에서는 DNA감식 결과 영아들의 DNA가 사건을 의뢰한 친부 쿠르조 씨의 DNA와 일치한다는 것을 밝혀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얼마 뒤 더욱 놀라운 사실을 발표했는데, 그것은 아이들의 어머니가 쿠르조 씨의 아내인 베로니크라는 사실이었다. 이 발표가 있은 후 프랑스에서는 국과수의 DNA 분석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이들 부부는 프랑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의 DNA 분석 결과는 믿을 수 없다”는 발표를 했고, 프랑스에서는 이에 동조하는 기사가 연이어 나왔다. 결국 국과수는 증거물을 프랑스연구기관에 넘겨주게 되었고, 국과수의 분석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한국 과학수사의 힘이 국내는 물론 해외로까지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국내 과학수사의 위상은 서래마을 사건에서 이슈화된 ‘유전자 분석 기술’에 국한되지 않는다. 마약 분석, 영상 분석, 그리고 부검 기술도 다른 나라에서 배우고 싶어 할 정도의 기술력을 자랑한다. “대한민국의 과학수사가 이미 아시아를 선도하고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는 우리나라가 과학수사 요원들을 양성하고 트레이닝 시켜주는 센터의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찾는 기술
  국과수의 일은 ‘보이지 않는 것을 찾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건 가운데 그 대표적인 예가 강호순 사건이다. 국과수는 강호순의 트럭 안에서 발견된 옷에서 혈흔을 찾아내는 데 성공. 강호순이 아무런 흔적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차에 남겨두었던 그 옷에서 발견된 혈흔의 양은 불과 1ng(10억분의 1그램)으로 ‘모기 눈물’보다 적은 분량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뺑소니 차량에 사람이 죽었는데 차에는 표시가 전혀 남지 않았던 것. 국과수에서는 이 차를 가져다가 한 달에 걸쳐 샅샅이 조사한 결과 차체에서 모직 섬유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피해자의 모직 스커트에서 나온 흔적이었다. 대구 지하철 사건에서는 희생자 192명 중에서 186명의 흔적을 찾는 성과도 있었다. 이일을 위해 국과수에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가 3개월간 대구에 내려가 있었다.
  “비행기가 추락했다고 하면 승객 명단을 통해 누가 떨어졌는지 알 수 있겠지만 지하철 사고는 어떤 차량에 누가 탔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죠. 1000도의 불이 났다면 우리 몸에 남는 건 거의 없다고 보면 맞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람을 찾아야 하는 스트레스란 표현하기 힘든 굉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정 원장은 고도의 ‘집념’을 요하는 이 일들에 대해 성과를 올리거나 특허를 낸 직원들에게는 어떻게든 노고를 치하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직원들에 대한 이러한 마음은 그의 언어 습관에서 더욱 드러난다. 어떠한 사례를 이야기하든 그의 말에서는 “우리 직원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나’가 아닌 ‘직원’들이 자랑스럽게도 그 일들을 해냈다는 이야기다.



고도의 집념과 사랑으로 국과수 수장
  최초의 여성 원장인 그녀는 사실 우리나라 마약수사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인물로 정평이 나 있다. “사실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운이 좋으려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말이 있죠? 저는 일찍이 미국 방문을 통해 마약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일들이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귀국 후 실험동물에 마약을 투여하고 소변을 받아 그 속에 있는 성분을 검출하는 실험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새로운 실험방법을 확립하게 되었죠. 그것이 여성으로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는 경쟁력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198O년대 중반부터 국내에서도 마약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그녀의 앞선 준비는 빛을 발하게 되었고, 이후 모발을 통한 수사 등으로 확대하면서 국내의 마약수사가 발전하게 되었다.
  마약수사와 관련해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을까? 그녀는 어느 날 아침 빨리 출근하라면 명을 받았다고 한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죽었는데, 사인을 밝혀야 하는 상황이었다. 부검 시 팔뚝에 주삿바늘 자국이 있었다는 이야기에 따라 마약을 의심해 수많은 종류의 마약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3만, 5만, 10만을 넘어 13만 종류의 약물 분석을 통해 그는 그 약이 마약이 아니고 동물 마취약임을 알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녀는 방송을 통해 왜곡된 내용들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CSI를 보면 범죄현장을 간 사람이 증거물을 갖고 와서 직접 실험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죠? 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범죄현장에 가면 느낌으로 ‘저 사람이 범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실험하면서 결과를 그쪽으로 맞춰가게 되거든요.”
  그녀는 덧붙여 “국내드라마〈싸인〉이 국과수를 알리는 계기가 되어 고맙지만 다뤄진 내용에서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며 자신을 ‘권력다툼의 승자’가 아닌 ‘34년 일을 사랑했던 연구원’으로 기억해주기를 바랐다.

  “우리 연구원의 부검의 선생님들은 부검을 하면서 이분들이 생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오는 곳이 우리 연구원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죠. 얼마 전에는 신생아의 부검을 앞두고 가만히 아이를 들여다보는 법의관 선생님을 보면서 그 앞을 차마 지나지 못했던 기억도 납니다.” 수사에 있어 ‘감정이입’은 철저히 배제하지만 ‘마음’을 쓰게 하는 일들은 분명히 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마음이 집념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국과수의 사후 처리 기술은 세계 최고라고 할 정도다. 하지만 정희선 원장은 그 부분을 ‘도리’로 생각할 뿐 자랑하지는 않는다.
  문득 그녀의 34년 외길인생의 비결이 궁금해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일에 대한 사랑이 아닐까요? 제가 처음 입사할 때 과장님 말씀이 3년은 있어 달라고 이야기하셨어요. 3년을 버텼더니 정말 일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되었고, 애정이 있을 때 모든 일에 대한 끈기와 집념이 생긴다는 걸 알았습니다.”
  정희선 원장은 국과수에서 34년 외길을 걸어온 여성으로서 약독물 과장, 마약분석 과장, 법과학 부장을 거쳐 2008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최초의 여성 소장으로 임명되었고 2010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격상이 되면서 초대원장이 되었다. 한국법과학회장, 국제법과학회 회장이고,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국제 법독성학회 차기회장으로 선출되었고 1996년 서울신문사에서 수여하는 제6회 마약퇴치 대상, 2007년 제7회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 2010년 비추미 별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글 사진 전상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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