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열정과 성실, 꼼꼼함이 묻어나는 교육자. 그가 이성언 한국능력개발원 회장이었다. 이성언 회장은 우리나라 산업교육 역사의 산 증인이다. 산업 교육의 체계 없이 1969년도에 영업 사원들만 교육했던 시점부터 지금까지 교육자의 인생을 걷고 있는 그의 기억으로부터 산업교육 43년 역사를 되짚어본다.
내가 1969년 종로2가에서 한국능력개발원을 설립하고 ‘산업훈련, 교육상담, 심리치료’ 이 세 가지 업무를 동시에 추진하기 시작했을 때, 나중에 알고 보니 4개의 산업교육 단체가 있었다.
한국생산성본부(’57)와 한국능률협회(’62), 한국(공업)표준협회(’62), 한국산업훈련협회(’67) 였다. 그래서 그 세 곳에 나도 강사로 또 지도위원 등으로 참여하게 됐는데 내가 지적, 인격적으로 성장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은 은인들이다.
그 당시 강사가 여러 명 있었는데, 강사가 따로 오피스를 열고 활동한 것은 공교롭게도 내가 처음이다 보니 ‘오피스 강사 1호’, ‘최연소 강사(31세)’, ‘마이카 강사 1호(’73)‘ 등의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니까 ’능력개발의 대부‘ 혹은 ’한국 산업교육의 산 증인‘이라는 말도 듣게 됐는데. 어느덧 74세로 43년째 일하고 있으니 현장의 산 증인이라고 말할 수는 있으나, 원로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외람된 생각이다. 강의는 나중에 시작했더라도 더 많은 연세는 물론 해박한 지식과 인격적으로 나보다 훨씬 위에 계신 분이 많이 계신다.
기업교육의 태동기 6~70년대
우리나라 6~70년대는 기업교육의 태동기여서 몇몇 재벌회사에서 사장이 훈시하는 조회시간이나 토요일 업무를 마치고 단발적으로 대학교수 또는 사회명사들을 초청해서 한 두 시간씩 교양강좌를 듣다가, 필요에 따라 영업사원의 세일즈 교육, 신입사원 입문 교육으로 교육이 시작되고 있었다. 당시 선도적인 단체도 일본생산성본부, 일본능률협회, 일본규격협회, 일본산업훈련협회를 모델로 “한국기업도 교육을 해야 한다”고 열심히 계몽하는 정도였었다.
나는 한국민주학생기구중앙위원회 의장(4.19)에서 청양군 농촌자원(自願)지도자 연합회 초대 회장, 충청남도농촌진흥위원(위원장: 도지사. 독농가 대표), KBS 아나운서(대전방송), 동운교역주식회사 영업담당 상무 등으로, 학생운동에서 농업화의 기수로 4_H클럽 지도자로 일했고, 산업화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다시 상경, 말하자면 ‘변화/변신’ 소리가 없을 때부터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서 능력개발원을 창설한 셈이다.
잠재능력 개발 지도로 능력개발 붐 일으켜
또, 일본최면과학원에서 최면을 배웠는데 특히 산업능률대학의 ‘자기최면에 의한 간부자질개발세미나’와 ‘독창성개발 리더코스’에서 큰 감명을 받아 한국 기업에 창조성의 위력을 소개할 생각이었지만, 그 당시 한국기업 입장으로는 신기술 도입기였으니 모방선취 기법이나 배우고 싶었을 시기였다고 할까.
어쨌든 나는 우리나라의 ‘최면술’ 시대를 ‘최면법’, ‘최면학’으로 바꾸는 작업과 동시에 전 서울시의사회 이사장 박충진 박사와 함께 한국 최초로 한국심신의학연구소를 설립하고(한국최면의학심리학회 초대 회장), 안에서는 카운슬링 및 심리요법과 더불어 ‘능력개발세미나’를 개강하고, 밖에서는 회사와 대학 등에서 ‘창조적 사고’ 대신 ‘적극적 사고방식’ ‘잠재능력 개발’ 등으로 내용을 바꿔서 지도함으로써 이 땅에 ‘능력개발 붐’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또 생산성본부 공개강좌에서 세일즈 테크닉을 강의를 계기로 삼성생명(동방생명) 성기종 과장이 찾아와 출강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보험회사 1위의 수많은 ‘보험모집인’을 계속해서 교육하게 되고, 영업사원을 위한 판매기법과 정신력 강의는 보험사, 제약회사, 신세계, 롯데 등으로 퍼져나갔다.
1970년대, 불황타개 의식개혁 교육 실시
한편, 공군사관학교에서 전역한 분들이 미군의 교육기법과 노하우로 기업교육을 선도했다. 1973년에 유철종 선생과 (故)김응삼 선생이 함께 한국조직개발협회를 만들어 나는 그 자문위원으로 참가했다. 기업들이 오일쇼크로 힘들어졌을 때 신영철 능률협회부장께서 찾아와 프로그램을 부탁했는데 KMA가 어려워졌을 때라 추진을 못하던 것을 유철종 선생과 함께 불황타개 의식개혁을 위한 교육 ‘능력개발세미나’ 공전의 히트, 3박4일, 4박5일씩 1년에 94회 실시했다. 그리고 김응삼, 이범규 선생이 산업훈련원을 개설, 나를 포함해 3인이 조인트 프로그램을 만들어 한 회사를 맡으면 임원부터 공장까지 계층별교육으로 전 사원을 교육하기도 했다.
경영학의 핵심인 심리학
경영학은 경제학과 달리 기업의 인간 관리를 다루는 학문이므로 그 핵심이 심리학이다. 창의력 교육, 경영관리와 정신건강, 이미지 연출, 대기업 임원의 회의 진행법까지 심리학에 기반을 두고 사람을 상대하는 다양한 분야를 다룬 것은 10년, 20년, 기업의 환경변화가 빨라지면서 교육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새로운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한 분야만 전문으로 고집하는 분은 시대와 함께 사라진 경우가 있다.
인재는 영문자로 T형 인간이 돼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한글로 ㅜ, ㅠ, ㅡ, ㅣ 형 인간을 이야기 한다. ㅠ형 인재는 폭넓은 교양과 2가지 이상의 전문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양하다고 하지만 내가 펼쳐 가는 전공 분야는 심리학과 경영학을 기반으로 한 ‘조직의 인간적 측면’, 크게 보면 한 분야이다.
창의력은 아까 얘기한 대로 ‘창조를 업적으로 연결하는 것’이고, 정신건강은 회사에서 육체적인 건강검진만 할 게 아니라 심리진단이 필요해진 것이 오늘의 새로운 의학조류 심신의학이다. 직장의 심리적 스트레스 대책으로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프로그램과 시스템으로 직장과 가정의 심신건강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인재육성·기업문화 재창조의 방아쇠, HRD
그래서 기업교육의 목적을 세 가지로 생각하고 있다. 첫째, 인재를 육성한다. 그것도 자주적인 인재를 기르는 것이 기업교육의 목적이다. 사람에게는 각자가 잠재적으로 자기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싶은 욕구를 갖고 있다. 그리고 자주적으로 노력하는 만큼 그 성과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런 욕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해서 그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그 기회를 주고 지원하는 것이 기업의 연수?교육이다.
둘째, 기업이 존속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조직의 개혁과 사원의 의식개혁이 요구되는데, 교육연수가 그 조직개혁과 의식개혁의 방아쇠가 되는 것이다.
셋째, 기업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 조직과 의식을 개혁하려면 구조조정이나 지식교육, 극기훈련 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조직의 풍토, 기업문화를 창조해야 한다. 따라서 ‘기업 HRD’의 그 궁극적 목표는 기업문화를 창조하고 건전한 기업문화를 발전시켜 나아가는 일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이미 400년 전에 이렇게 갈파했다.
“사람은, 아무 것도 가르칠 수 없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잠재능력을 스스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이 또한 현대에 사는 나의 교육관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건 아마 앞으로 400년 후에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 방법이야 시청각, 교육공학, e-Learning 등등으로 계속 발전해 가야 하겠지만.
이성언 회장 프로필
전 한국최면의학심리학회 초대 회장, 한국창조성개발본부 자문위원, 서울대 외래 강사 등을 역임하며 기업교육과 최면의학, 심리학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현재는 한국능력개발원(KADI) 원장, 창조경영컨설턴트그룹 대표, Smart-Vision연수원(원주) 이사장, 서울심리상담?치료센터 원장, 한국발명개발원 상임고문, 특허청 선정-신지식특허인으로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저서로는 <병은 마음으로 고쳐라>, <창조능력개발법>, <자기최면 법>, <NO라고 말하고 싶을 때 YES라고 말하지 말라(역서)> 등 다수가 있다.
정리 김현지 기자 사진 성무현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