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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10-01 15: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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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영화 ‘명량’이 국내 영화계를 휩쓸면서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 다시 큰 화제가 됐다.
위기관리 리더십이란 아마도 이순신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는 역적으로 몰려 결국 전투에서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왜국의 침공으로 백성들이 죽어갈 때 명으로 도망치기 바빴던 선조가 그를 지독하게 싫어했기 때문이다.
결국 제대로 된 리더가 없으면 한 나라의 영웅도 자신의 뜻을 절반도 펼치지 못하고 스러져 버린다.
이렇게 역사는 우리에게 많은 화두를 던져준다.
12년 넘게 조선왕조실록을 만화로 정리한 박시백 작가는 조선 리더들의 기록들을 봐왔다. 과연 그가 느낀 조선왕들의 리더십은 어땠는지 들어봤다.



 
▲ 불광동 근처 커피숍에서 박시백 만화가를 만났다. 그는 조만간 ‘요약본 조선왕조실록’을 발간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정치사라는 것은 당시 시대의 요구를 제대로 판단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찾는 일입니다. 그런데 신하들은 유교정신만 내세우며 자기 목소리만 높였고, 왕은 그 와중에 자기 권력을 지키느라 바빴죠. 그나마 힘을 키우지 못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어요.”
박시백 작가의 조선왕조실록은 그야말로 왕과 신하의 싸움이다. 때로는 목숨까지 걸면서 싸우며, 승자와 패자가 시시때때로 바뀐다. 이런 정치사에서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세종: 토론하고 상상하라
그래도 우리는 조선시대 가장 위대했던 리더를 알고 있다. “단연코 세종입니다.” 박 작가는 힘을 주어 이야기했다.
“기본적인 학문 성향이 신하들보다 나았고 이해력이 워낙 좋으니 과학이든 음악이든 천문학이든 최고 전문가의 경지에 있었던 사람이에요. 머리가 좋으면서도 누구보다 성실하게 공부하고 세상을 내다보는 것도 10~20년이 아니라 100년 이상을 내다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머리가 좋고 능력이 좋은 정도로 최고의 리더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박 작가는 세종의 리더십은 오만하지 않으면서 신하들의 능력을 최대로 끌어주는 토론문화에 있었다고 본다.
세종은 직위에 있는 동안 신하들과 경전을 논하는 경연을 스스로 즐겼다. 오히려 신하들이 세종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한 자라도 더 공부를 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한번 옳다고 생각한 일은 중간에 멈추는 법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갔다. 정치는 물론, 과학, 음악, 외교 등 다양한 일들을 앞에 두고 망설이지 않았으며, 대충하는 법이 없이 좀 더 창의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밑의 사람이 실수를 해도 그를 믿어주고 ‘지금 멈추면 아니한 것만 못하니 계속 진행하라’고 북돋아주었다. 각 분야에는 해당 전문가를 기용하고 능력만 있으면 천민과 양반을 가리지 않았다.


성종: 모범 군주가 최고 리더는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성군이나 카리스마 있다고 말하는 다른 왕들은 어떨까. 성종에 대해서 물어봤다.
“성종은 사대부들이 좋아하는 왕이었습니다. 신하들이 그의 일에 반대를 하면 스트레스를 받고 짜증을 내면서도 결국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리더이었죠. 자기 소신대로 일을 추진하지 못하고 남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리더는 결코 좋은 리더라고 할 수 없죠.” 성종은 조선의 문치주의를 이끌었던 리더였다. 그간 진행되어오던 경국대전 편찬을 마무리하여 제도를 정비하고, 당시 젊고 개혁적인 사림들이 정계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하지만 박시백 화백은 예전 것을 지키기만 하며, 남이 뭐라고 지적해도 자제만 하는 성종의 모습이 지금 우리가 바라는 리더와 거리가 있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정조: 실력보다 성과다
그렇다면 드라마 ‘이산’으로도 잘 알려진 명군 정조는 어떨까?
박 작가는 오늘날 우리들이 바라보는 정조에 대한 이미지는 판타지라고 말한다.
“실제 정조는 대단히 보수적인 주자학파였어요. 당시 세계는 급격한 변화의 시대였고, 내부에서도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요구가 높았죠. 하지만 정조는 보수적인 시각으로 이들의 요구를 반대했습니다. 시대는 변화를 원하는데 그에 따라가지 못했던 리더죠.”
그러나 그는 암행어사를 파견하는 등 사회 부조리를 바꾸고 개혁을 시도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이런 질문에 박 작가는 정조의 그 어떤 시도도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명석함이나 성실함은 세종 못지않아서 자신이 신하들의 스승이라고 자부할 정도였지요. 하지만 그 정도 능력을 가지고도 무엇 하나 제대로 된 성과를 만들지는 못했어요. 그저 관리하고 지키는 데에만 급급했죠. 암행어사를 파견해 조선 곳곳을 정찰시키려고 했다지만, 이미 조선은 삼정의 문란으로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정조는 이런 문제들을 전혀 개혁하지 못했습니다. 척신정치를 그렇게 반대하더니 결국 말년에는 척신정치를 동원했죠. 그 결과 그가 죽고 난 이후 세도 정치가 시작되는 원인이 되었죠.”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전권


리더십은 현장 속에서
오늘날은 조선시대와 다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정치나 경제, 지식의 주기도 상당히 빨라졌다. 오늘 배운 지식이 내일이 되면 쓸모없게 될 때가 많다. 하지만 박시백 작가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진정한 리더는 반드시 그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장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세종은 평소에 문무관원들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했고, 그 대화 중 나온 말은 어떤 것도 문제 삼지 않았다. 그 결과 주변 동향을 제대로 알고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황희 정승이나 장영실, 김종서 같은 인물들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세상과 소통하려는 힘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면 임진왜란이란 위기 상황에 이순신이나 곽재우 같은 장수들조차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았던 선조는 백성들과 신하들에게 외면 받았던 리더다. 오히려 그의 아들 광해군이 현장에서 백성들을 다독이고 전란을 정리해 칭송받는 리더가 됐다.
“혼자 똑똑하고 잘 났다고 리더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동시대의 동의를 이끌어내야 하고, 자기가 앞서서 이끌고 도움이 되는 사람을 규합해서 실현해 나가는 부분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필요한 리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글 김관모 기자


▶ 박시백 작가
1984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97~2001 한겨레신문 만평 `담당자
2003 대한민국 만화대상 만화부문 우수상
2013 제10회 부천만화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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