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한 세상 사는 것이여”
‘반갑고 고맙고 기쁘게’ 살아야 인생 후반전이 보인다
1994년 46세라는 늦은 나이에 데뷔한 한 가수가 있었다. 당시는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 같은 스타들로 대중가요가 크게 요동치던 시기였다. 빠르고 화려한 음악들로 점령된 거리의 뒤켠, 100여명이 들어서면 꽉 차는 소극장에서 한복을 입은 가수는노래를 시작했다.
‘하얀 꽃 찔레꽃/순박한 꽃 찔레꽃’ 살살 마음을 어르듯 느리고 낮은 장단으로 가다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노래는 점점 클라이막스로 들어선다. 그리고 마지막 ‘찔레꽃처럼 살았지/찔레꽃처럼 울었지’ 절규하는듯, 마음의 한을 풀어내는 듯 들려오는 그의 열창에 사람들은 전율을 느꼈다. 2년 뒤 그는 1996년 세종문화회관에서 단독 콘서트를 하게 됐다. 이제는 국민 소리꾼으로 유명한 장사익의 이야기다.

눈이 쌓인 어느 날 오후, 홍지동 자택에서 소리꾼 장사익을 만났다. 벌써 데뷔 20년차. 환갑을 훌쩍 넘긴 그에게서 나이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손님이 오면 늘 그렇듯 차를 대접한다며 친척 만나듯 친근하고 활기차게 대하는 그의 모습에 70을 바라보는 노인의 이미지는 찾을 길이 없었다. ‘나도 저렇게 늙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의 충격.
꿈을 위해 현실을 바로서다
“저처럼 마흔 여섯에 노래하십시오. 그러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리 젊게 살 수 있느냐는 질문에 소리꾼 장사익은 농을 던졌다. 단순한 말 같지만 쉽지 않은 이야기다. 40대 중반이면 한창 일할 시기가 아닌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해도 갑자기 하던 일을 그만두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그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창업하는 사람들은 생각해서 금방하면 될 것 같지만 암것도 안돼요. 나도 가수 꿈 꿨지만 25년 직장생활 했어요.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노래하기 위해 길을 걸어왔어요. 중학생 때까지 웅변을 해서 뒷산에서 소리 지르기도 하고, 직장 다니면서 음악학원에서 노래 배우고, 혼자서 힘들 때면 기타 치면서 노래 부르기도 하고. 그때부터 뭔가 모르게 준비를 했던 것이여. 노래방 가서 노래 잘하는 그런 게 아니라 직장생활 하고 깨고 넘어지고. 제가 10번 넘게 실패하면서 인생살이 살았잖아요. 그러면서 인생도 살고. 이 모든 것이 자양분이 된 것이여.”
꿈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은 짐덩이를 얹은 삶이다. 장사익이 그랬다. 은행, 카센터, 무역상, 영업사원, 포장마차 사장 등 안해본 일이 없었지만 모두 어울리지 않는 옷과 같았다. 걸려 넘어지고 치이고 무너지기를 반복하면서 그는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들을 하나둘씩 버려가고 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진짜 현실을 알게 됐고 자기 자신을 바로 볼 수 있었다.
“회사 생활은 온실 아닙니까. 깨지고 얻어터지더라도 때 되면 월급 꼬박꼬박 나오고 사회적· 경제적 보장도 되는데, 회사그만두면 시베리아 벌판이라. 장관이고 국회의원이고 CEO고 필요 없어. 발가벗고 다 똑같애. 거기서 시작해야지. 가수 하라고 하면 다 될 것 같죠. 하지만 막상 판 깔아놓으면 안 되잖아요. 안 된다는 것에 대한 공부를 해야지. 그러면 실패하더라도 개선할 방향도 생각날 텐데. 뭔가 준비하지 않으면 가차 없어요. 가차 없어.”

꽃을 10년만 보면 내가 꽃이 된다
적응하지 못해 힘든 생활은 그의 꿈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일이 풀리지 않고 힘들수록 그는 자기 앞의 꿈을 더 확실하게 그려갔다. 그래서 태평소를 손에 잡았다. ‘이대로 사느니 딱 3년만 죽었다 생각하고 해보자’ 마음먹고 장사익은 사물놀이패를 찾아갔다. 그렇게 시작해 자기 꿈을 이루기까지 3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뒷풀이의 조용필’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노래 잘하고 끼가 넘쳤던 그가 ‘풍류피아니스트’ 임동창의 권유로 가수로 나서게 된 것이다. 그의 운명을 바꿔준 노래 ‘찔레꽃’도 이렇게 만나게 됐다.
“제가 아침에 네다섯 시에 일어나는데 제일 먼저 하늘을 보는 거여. 여명! 그때가 별이 제일 반짝거린다고 하잖아요. 늘 그 별을 봐요. 우스개 소리로 공연에서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20년 동안 동녘하늘의 별을 봤더니 제가 별이 됐어요. 별. 스타! 꽃을 10년만 봐라 이거지. 그럼 내가 꽃이 된다 이거거든. 뭔가 하나 계속 하면 뭐가 돼도 되지 않겠어요? 제가 20평짜리 집에서 살적에 지금 사는 평창동 집 보면서 ‘10년 후에 내꺼야’ 하고 꿈꾸면서 살았어요. 그런 마음 가지고 있으니 행복한 거야. 그리고 지금 이 집에서 살잖아요. 지금도 저는 내 10년 후를 꿈꿔요. 지금 내가 60대인데 70대 될 때 어떻게 노래를 부를 것인가. 지금이야 아직 팔팔하니까 그때가 되면 죽음과 같이 가야돼요. 내가 어떤 마음으로 가야될지. 그런 마음들, 꿈들.”
여전히 이 10년의 법칙은 이어지고 있다. 그는 10년 전에 미각(微刻) 조각자 흑우 고 김대환 선생에게 글을 배워 장사익체를 만들었다. 이 글씨는 이상봉 디자이너가 파리공연에서 옷의 디자인에 사용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또, 환갑을 맞이해 마라톤 42.195킬로미터를 4시간 12분에 완주했다. 이 역시 10킬로미터나 하프코스 등 꾸준히 달리기 연습을 해온 결과다.
“내가 나이 먹었다고 안 되는 것은 없어요. 늙었다고 인생 끝났다고 술이나 먹고 지내면 그걸고 끝나는 거여. 깊은 산속에 서 작은 꽃이라고 누구 안 본다고 안 피는 것 같아 보여도 다 펴요. 딱 10년만 해보면 뭐가 되든지 돼요. 돼.”

우리는 만나서 무엇을 버릴까
올해 20주년을 맞아 소리꾼 장사익은 장사익 소리판 ‘찔레꽃’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순회공연을 돌았다. 주제는 초심이다.그는 이쯤에서 다시 자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깊은 산속에 옹달샘이 있는데 그것은 약수여. 동물도 먹고 사람도 먹고. 그런데 그게 하도 유명해지면 물도 말라버리고대장균 생기고 그러잖아요. 사람도 똑같애. 대우도 잘 받고 세상 아무것도 모르고 박수에 환호 받으니까 건방져져. 그러면 노래도 안 나오고 머리에 똥만 들어차고. 그래서 초심이라고해서 부족한 것, 허황된 것 다 뒤돌아보고 새롭게 가보자는거여. 너무 잘나가는 사람은 넘어져요. 뒤를 안 봐. 템포를 줄이고 같이 가야지. 독불로 가면 못 혀.”
그가 생각하는 초심이란 버릴 것을 잘 버리는 일이다. 노래를 하기 위해 그동안 자기가 했던 일들을 과감히 버리지 않았던가. 그는 아무리 돈을 많이 주는 공연이어도 서너 시간 전에 무대를 살필 수 없다면 거절한다고 했다. 유명하기 때문에 부리는 호기가 아니다. 자연의 순리이며 이치와 같은 일이다.
“누가 앞에 있는지도 없고 봄여름가을겨울도 없어요. 여름에는 춥게 살려고 하고 겨울에는 덥게 지내려 하죠. 나무들은 겨울에는 홀랑 벗고 딱 버티잖여. 다시 비우고 여름에는 다시 잎을 많이 피어서 그늘도 만들고. 그러려면 내 앞의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되는 거여.”
그래서 장사익은 이현주 목사의 시 ‘우리는 서로 만나 무얼버릴까'를 노래로 만들었다. 서로 얻으려고만 하는 욕심을 버릴 때 더 큰 것을 얻는다.

장사익은 우리 삶이 90살까지라면 처음 30년은 부모님 슬하에서 크고, 중간 30년은 회사나 가정, 국가 등을 위해 일하면서 살고 나머지 30년을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과 작별하는 마지막 날 ‘안녕’이라고 웃으며 툴툴 털고 갈 수 있는 게 그의 꿈이다.
내년에도 장사익 소리판은 계속된다. 대중가요의 주기가 짧아져가는 스피드의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장사익을 만나고 그의 노래를 들으면 속도경쟁 속에서 찾을 수 없는 것들을 깨닫게 된다.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버리고 사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 그의 노래는 우리에게 더욱 소중한 존재가되고 있다.
글 김관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