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은 식품군, 서비스군, 건설제조군, 금융군 등 크게 7개 분야의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사업 특성이 다르다보니 인재상이나 인재육성을 만들어가는 과정도 쉽지 않다. 게다가 현재 롯데그룹은 2018년까지 아시아 TOP 10 글로벌 그룹으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새로운 인재경영의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시기다. 이에 2013년 롯데인에 인재경영연구소가 설립돼 혁신과 변화를 위한 싱크탱크 역할을 맡고 있다. 이곳의 수장을 맡고 있는 전영민 롯데인재개발원 인재경영연구소장을 만나 어떤 HRD를 계획하는지 들어봤다.
“한 그룹의 인재상이 있다면 실제 현장에 별로 유효하지 않을 겁니다. 과거의 성공을 돌아보고 결정한 인재상인데, 빠르게 변하는 현실 속에서 고정된 인재상이 있을 수 없죠.”전영민 소장은 인사분야에서 21년 넘게 일해 온 인사분야 베테랑이다. 롯데그룹 본부에서 다양한 인재들을 선발하고 육성하면서 그가 배운 한 가지는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전영민 소장은 혁신과 변화 속에서 HRD라는 틀에서벗어나 다양하고 높은 가치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십자가형 인재를 꿈꾼다
전영민 소장은 롯데그룹이 추구하는 십자가형 인재가 오늘날 추구해야 할 인재상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신입직원부터 간부 레벨까지는 특정 직무에서 최고의 전문성을 기르는데 집중시킨다. 팀장급부터 초급임원 시기에는 자기 인더스트리를 뛰어넘어 전체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 TOP 리더로 거듭나도록 한다. 특히 다양한 인더스트리에 대한 포괄적 이해와 전략적 통찰력을 지닌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전 소장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일이다.
“인재경영에서 중요한 것은 평등이 아니라 효율성과 집중입니다. 한 부대의 병사들 모두를 중대장으로 만들 필요가 없듯 핵심인재를 파악해 그들을 집중적으로 우수한 리더로 육성하는 것이 경쟁력입니다.”
롯데인재개발원은 이런 철학 아래 강도 높은 교육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그중 전 소장이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이 2011년부터 올해까지 진행됐던 팀장자격과정이다. 2200명이 넘는 팀장들을 대상으로 10주 동안 토요일 8시간씩 교육하는 과정으로 교육생들은 교육 후에 반드시 시험을 치른다. 총 10차례의 시험을 본 후 하위 20%는 다시 재교육을 받으며, 자격을 이수하지 못한 교육생들은 팀장 보임이 제한된다. 또한 교육 1년 후에는 재평가를 통해 팀장들이 현장에서 자신이 배운 것들을 제대로 적용하는지 점검한다. 전 소장은 이 과정을 통해 얻은 경험들과 지식들을 묶어 <팀장 매뉴얼>이라는 책을 발간해 그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롯데그룹 직원들 사이에서 롯데인재개발원의 교육은 혹독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 과정 중에 몸무게가 5~6 킬로그램 빠진 교육생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전 소장은 이런 교육방식이 “롯데그룹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롯데그룹은 1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리는 곳이 아닙니다. 유통업이나 식품업 같은 직군의 특성상 현장에서 팀의 역량이 강해야 합니다. 결국 현장 사령관, 즉 팀장
의 역할이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그는 소위 ‘쫄지 마’ 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롯데인재개발팀에서는 설사 교육생이 상무나 전무급 고위임원이어도 교육장에 들어서는 순간 직급과 관계없이 한 명의 교육생으로 상대한다. 원칙과 규율을 바로 잡아야 HRD의 권위가 생기기 때문이다.
단순한 HRD를 넘어서라
“저는 인재경영을 하는 사람은 HRD나 HRM을 넘어 사람과 전략의 전문가이며 솔루션을 생각하는 자 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는 것은 교육공학적인 차원에서 논의되는 경우가 많아 현장과 잘 맞지 않습니다. 전 시스템을 유연하게 활용해 직원들이 자신의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Enabler가 돼야 합니다.”
HRD에 대해 묻자 전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국과 서양은 일에 대한 접근이 다르다고 봤다. 서양은 처음부터 직무에서 출발하지만, 한국은 사람을 먼저 뽑고 그 이후에 적합한 직무에 배속하거나 순환보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즉, 한국의 기업들은 서양처럼 준비된 전문가를 뽑는 것이 아니기에 직무교육을 통해 전문가를 양성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예전과 차이가 있다면 집체교육에서 벗어나 자기주도학습으로 시스템을 바꾸고 있다. 교육프로그램에 학점제를 운영해 인사관리와 접목시키는 것은 물론, 아크로폴리스라는 앱을 개발해 모바일 러닝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이지리딩(理智 Reading)이라는 사보를 격주로 간행하여 임원들의 활동이나 전략을 홍보하고 있다. 사내 포럼이나 컨퍼런스를 통해 임직원 간의 소통을 강화하고, 성과가 높은 직원들에게 수상의 기회를 주기도 한다.
임원처럼 생각하고, 임원을 지향하라
전 소장도 처음 인사부서를 맡게 됐을 때 심적으로어려움이 많았다. 생소한 분야에 들어와 5,6년간 주어지는 임무를 처리하기에 바빠 제대로 마음을 잡지 못했다. 그러다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일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후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여자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등에서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팀장매뉴얼>을 비롯해 <왜 여성인재인가>, <어떻게 일하며 성장할 것인가> 등의 책을 내면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단순한 HRDer가 아니라 커뮤니케이터로 다양한 채널을 넓히고 싶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단순히 이익을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재들에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전 소장의 사무실에는 ‘청사탁영탁사탁족(淸斯濯纓濁斯擢足)’ 라는 글귀의 액자가 있다.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는 말로 사람과 조직 분위기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맹자>에서 나오는 말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실 액자에 걸려진 글귀를 자신도 구해서 걸어둔 것이다.
또한 그의 책장에는 괴테의 흉상도 놓여있다. ‘롯데’라는 회사명이 괴테의 저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나오는 여주인공의 이름을 따온 것이기 때문에 ‘왜 롯데라는 이름을 썼을까’를 고민하기 위해 가져다 놓은 것이라고 한다. 이는 회사 임원처럼 생각하며 어떻게 해야 가장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지 고민하기 위한 노력이다. 인재경영의 롯데맨으로서 그 길을 착실히 걸어가고 있는 셈이다.
“롯데그룹 안에는 이원준 롯데쇼핑 대표님이나 마용득 롯데정보통신 대표님 등 인사출신의 뛰어난 CEO들이 많습니다. 이들처럼 인사팀 출신으로 일 잘하는 임원이 되는 것이 제 꿈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롯데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회사의 사회적 책임도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