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운실 아주대학교 교육학교수가 자신의 연구 실 내 서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2010년도에 동양인 여성 중 최초로 세계 평생학습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진 최운실 아주대학교 교육학교수는, 한국에서 문용린 전 교육부장관과 김신일 전 교육부총리에 이어 세 번째로 이름을 올린 인물로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 일조했다. 이에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아주대학교를 방문했다.
어머니는 4살 무렵이던 절 업고 밤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 계신 사랑방을 찾아갔습니다. 사랑방에 도착한 어머니는 앞에 걸려있던 칠판에 무언가를 빼곡 히 적었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무엇을 하는 장면인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러서야 알게 됐습니다. 그것은 당시 초등학교 교사들을 동원한 국문보급, 즉 문맹퇴치교육이었습니다.” 최운실 아주대학교 교수는 자신이 어릴 때 어머니가 초등 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밤마다 국민의 문명퇴치교육에 동 참했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말문을 열었다. 과거 한국은 초등학교 교사, 군인, 대학생 할 것 없이 가능한 인력을 총동 원해 문맹퇴치교육을 함으로써, 오늘날에는 문맹자가 가장적은 나라로 인정받게 됐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은 지난 1989년도 6월에 세종대왕상을 유네스코에 제의했고, 1990년도부터는 매년 9월 8일마다 수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가 평생교육과 인연을 맺은 것은 어머니의 등에 업혀 문외교육에 동행하기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선 학습이란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산스크리트어로 ‘라이스’라 알려져 있다. 여기서 라이스란 평생을 경작하면서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그녀의 이름에 함축된 의미 또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이처럼 그녀는 자신의 이름에서부터 학습과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됐고, 지금까지 그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평생학습의 네 가지 기둥을 통해 배움의 가치를 논하다
“유네스코가 이야기하는 평생학습에는 네 가지 기둥이 있습니다.” 우선, ‘Learning to know’, 알기 위한 학습이다. 여기서 앎은 단순한 지식은 넘어선 지혜로서 배우고 익힘이 가능한 것을 내포하고 있다. 둘째, ‘Learning to do’다. 이는 아는 것을 행한다는 지행합일의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알지만 실천하지 않는 것은 모르는 것으로서 행하기 위한 학습이라는 것이다. 셋째, ‘Learning to leave together’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기 위한 학습을 의미한다. “한자로 사람인(人)자를 보면 사람과 사람이 어깨를 기대고 있는 형상인데, 이는 사람이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마지막으로 'Learning to be’, 존재하기 위한 학습이다. “사람이 죽으면 무덤의 관 위에 뭐라고 쓰는지 아십니까? 학생, 부군, 신위 등과 같이 씁니다. 그런데 박사의 경우에는 박사란 칭호를 사용합니다. 이는 박사가 학습의 종국점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데, 전 박사란 학습의 시작점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약하면 박사란 홀로 배워갈 수 있는 사람의 작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유네스코에서 말하는 평생학습의 네 가지 기둥은 알고, 행하고, 생존하고, 존재하는 ‘지행생존’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지행생존’에 의거해 모든 면에서 사람이 최고라고 말했다. 사람이 존재하면 안 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사회의 모든 것이 고갈 및 오염되고 피폐화되며, 결국 전쟁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인간에게는 배움이라는 보물이 있어 인류는 절대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 배우고 서로 가르치다
최근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는 평생교육기관이 한곳 있다. ‘치노이치바’다. 그녀는 3년 전에 이어 올해 여름에 평생교육자들과 함께 일본에 방문했고, 오차노미즈여자대학의 마스다 마사루 교수를 만났다. 마 교수는 ‘치노이치바’의 설립자로, 평소 지혜의 시장을 강조해온 인물이다. 여기서 지혜의 시장이란 지식의 시장을 뜻하는 것으로 자본을 통한 지식교환이 아닌 서로가 가르치고 배움으로써 지식을 교환하는 장을 의미한다. 그녀에 따르면 ‘치노이치바’는 3년 전까지만 해도 몇 백 명 정도가 모여 지식을 교환하는 장에 불과했다 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6만 9천여 명으로 확대됐다는 말에 그녀는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다. 마 교수에 따르면 동경대학을 시작으로 일본의 식자층에 이르기까지 자신들 사비를 들여 찾아와 강의한다는 것이다. 한편 ‘치노이치바’를 찾아와 강의하는 사람들의 국적은 일본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일례로 세종대왕에 대해 강의하는 한국인도 있다. “일본 사람들이 굉장히 궁금해합니다. 세종대왕, 저 왕은 누구지? 누군데 학교마다 세종대왕 동상이 세워져 있는 거지?” 이처럼 일본인들이 갖는 궁금증을 해소해주기 위해 여러 한국인이 ‘치노이치바’를 방문해 세종대왕 또는 과거 조선의 위대한 왕들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그들의 직업이 강의를 전문으로 하는 교수나 교사, 강사가 아닌 일반 시민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3년 전과 달리 이렇게 활성화된 ‘치노이치바’의 성공 요소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때 마침 그녀의 일행이 마 교수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이런게 돈 없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이렇게 강의를 하러 오려면 일단 경비가 들어갈 텐데 신기합니다.” 마 교수가 답했다. “돈이 뭐가 그렇게 대단합니까? 저에게는 생각을 함께할 수 있는 7만여 명 이 있습니다. 어느 돈이 그 7만여 명을 대신하겠습니까? 돈 보다도 몇 배 더 귀한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나의 돈이 자, 곧 보물입니다.” 이와 같이 말한 마 교수에게 감탄한 그녀는 호학호교, 서로 배우고 서로 가르치는 정신을 본받아 우리 사회의 학습문화가 보다 발전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운실 아주대학교 교육대학원 평생교육 및 HRD학과 교수가 자신의 연구 실에 비치된 컴퓨터 앞에서 지난 11월 11일에 첫 발간한 <평생학습타임즈>를 들고 앉아 있다.
100년 학습의 ‘길’이 되고 ‘빛’이 돼 창대함에 다가가다
“〈평생학습타임즈)는 100년 학습의 ‘길’이 되고 ‘빛’이 되는 신문이라는 방침 하에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참여 가능한 ‘열린 신문’, 평생학습과 HRD 세상의 감동적인 따듯한 소식을 전하는 ‘울림의 신문’, 사람을 존중하고 모든 이가 함께 주인이 되는 ‘어울림의 신문’을 추구합니다. 이를 위해 다섯 가지 ‘학습신화’를 담아내려 합니다. 새로운 이야기, 불꽃 같은 이야기, 믿을만한 이야기, 다양한 이야기, 광활한 이야기들을 펼쳐보고자 합니다.” 그녀가 〈평생학습타임즈)를 발간하면서 발간사로 실은 글귀다. 그녀는 〈평생학습타임즈)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려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학습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그녀는 사람들이 현장 속에서 학습을 통해 세상에 없는 일을 일궈낼 수 있음을 믿는다고 강조했다. 물론 처음부터 창대하게 시작하기는 어렵다. “안양의 어느 골목에서는 매주 골목학교가 열립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 다닌 적이 없는 할아버지나 할머니들이 평생 갈고닦은 솜씨를 통해 스티로폼을 골목의 땅에 놓고 앉아 지훈 할매의 꽃시장학교, 된장학교, 송편학교 등을 개설해 가르치는 겁니다. 이러한 현상은 마을 전체를 캠퍼스화 합니다.” 이외 에도 경기도평생교육진흥원에서는 골든트라이앵글 프로젝트, 일/학습복지/문화가 어우러지는 황금의 삼각형 사업을 추진 중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동네 학습공간’을 지정해 어디서든지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모든 공간을 학교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이러한 노력은 아직 그 모습이 미미하지만 창대함으로 나아가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다.
아프리카에서 절실한 행복의 모습을 목격하다
그녀는 과거 가나안 농군학교의 김용기 장로와 겪은 한 가지 이야기를 소개했다. 당시 김 장로는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에 있는 국경없는 교육가회(EWB, Education Without Border)에서 활발히 활동한 분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에 그녀는 김 장로와 함께 아프리카의 부르키나파소를 방문한 바 있다. 그곳에 방문한 그녀는 현장을 둘러보고, 한국의 교육을 알리는 등 많은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다 한번은 아프리카 내 오지에 있는 학교를 찾아가는 날이었는데, 빈손으로 갈 수 없었던 그녀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크레파스나 공책 등의 학용품을 준비해 학교를 방문했다. 그런데 학교에 도착하고 이상한 현장을 목격했다. 학교에서 종이 울렸는데 도 불구하고 40도의 땡볕 아래에서 아이들이 모여앉아 있는 것이다. 이유를 묻자, 자신들은 학생이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서는 한국 돈으로 일 년에 2만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데 학비를 낼 수가 없어서 결국 학교를 못 다닌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학비를 내고 다니는 학교 내 교육 시설이 적절한 환경을 갖춘 것도 아니다. “칠판도 없습니다. 거의 바닥에다가 쓰다시피 합니다.” 이처럼 학교 내 열악한 교육환경을 살펴본 그녀는 자연스레 밖에 모여앉아 있던 아이들에게로 시선이 끌렸다. 그때까지도 아이들은 그 뜨거운 땡볕 아래 앉아 있었다고 한다. 학생도 아닌데 학교에는 왜 왔는지 아이들에게 묻자, 돌아온 대답은 공부할 수 없어도 친구들과 같이 손잡고 등•하교하는게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대답을 들은 그녀는 학교의 교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가져온 학용품을 먼저 저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습니다.” 그녀는 땡볕 아래 앉아 있던 아이들을 불러 준비해온 크레파스와 공책을 한 사람당 세 개씩 나눠줬다. 그런데 갑자기 한 아이가 제자리에서 부르르 떨면서 오줌을 쌌다. 아이에게 왜 갑자기 오줌을 쌌는지 물었더니 너무 좋아서 그랬다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그녀는 아직도 비싼 밥을 먹는 게 너무 죄스럽다고 표현했다. “그 아이가 하는 말이 평소에 그렇게 부러워하던 학용품을 만져볼 수 있게 돼서 너무 행복하다는 겁니다.” 그녀는 붉어진 눈시울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훔치며 향후 그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그 일을 하다가 죽을 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고 토로했다.

최운실 아주대학교 교육대학원 평생교육 및 HRD학과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 비치된 상장 거취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새벽 아침에 이슬을 맞고 달콤한 공기를 마시며 학습에 정진하다
“새벽에 떨어지는 아침 이슬을 딱 맞고 달콤한 공기를 마시면서 연구실 건물을 나갈 때면 피곤하기보다 너무 행복합니다. 다만, 새벽 시간마다 연구실을 방문해 청소해주는 아주머니가 제 걱정을 많이 해줘서 미안할 따름입니다. 제가 연구실에서 밤새 공부하다가 쓰러질까봐 걱정해주는 겁니다.” 학교에서 집까지 이동시간이 약 30분 정도라고 말한 그녀는 평소 아침 7∼8시 사이에 퇴근하고, 몇 시간 숙면을 취한 뒤, 다시 출근을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러한 출•퇴근을 반복하면서 항상 공부에 정진하고 있다. 이외에도 가르치는 게 최고의 학습이라고 말하는 그녀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토론하는 방식을 통해 자기계발을 해나가고 있었다. “정식 강의 이외에도 학생들의 논문 클리닉을 통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바쁠 때는 주말을 완전히 반납하고 행하기도 하는데 저한테는 최고의 자기계발 방법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당해 발표된 학술지나 해외 원서를 통해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학습해나가고 있다. 게다가 아주대학교 앞에 있는 서점에서 년간 500만 원 정도의 서적을 구매한다는 그녀는 책을 통해 통찰력을 얻고 자극을 받아 창조적인 관점을 갖는데 도움을 받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신의 경우에는 구매하는 서적의 양이 많아서 반복적으로 책을 보기는 어렵다며, 대신 본인만의 노트에 정리하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본 다고 답했다.

최운실 아주대학교 교육대학원 평생교육 및 HRD학과 교수가 평소와 같이 자신의 노트에 필기를 하고 있다.
인생의 스승들로부터 배운 철학을 통해 세상과 나누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대표적인 스승으로 기억하는 분이 총 3명 있다고 운을 뗐다. 우선 김종서 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다. 작고한 분이지만, 그녀에게 있어 김 전 교수는 아버지와 같았다고 한다. “돌아가시기 전, 새벽에 잠깐 제 꿈에 오셨다 갔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오전 5시까지 어디를 가야 한다는 겁니다. 일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30분 정도였는데, 이후 오전 8시 20분쯤 제 핸드폰으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바로 몇 시간 전 꿈에서 만났던 분이 제가 일어난 시간으로부터 10분이 지난 오전 5시 40분 정도쯤에 돌아가셨다는 겁니다.” 그분에게서 사람에 대한 사랑을 배웠다는 그녀는 평생을 교수자로서 많은 후배와 제자를 길러낸 김 전 교수를 진심으로 존경한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그녀는 한국의 페스탈로치로 불리는 황종건 교수자를 지목했다. “평생 거지의 아버지로 불리셨던 분으로, 전 거지들을 데려다가 자식으로 삼고 키우셨습니다. 사회교육의 투철한 철학을 바탕으로 평생 낮은 위치에서 어려운 분들과 살아가셨습니다.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분으로,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큰 영향을 준 교수자십니다.” 마지막으로 전 교육부총리였던 김신일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의 평생교육에 대한 철학을 통해 자신 또한 사회교육의 길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고 그녀는 말했다. 이에 그녀는 앞서 언급한 3명의 인생스승들로부터 배운 철학을 바탕으로 자신이 가진 지식을 지혜로 환원해 세상과 나눠 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