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언론은 그에게 4전 5기라고 보도한다. 하지만 4전 5기의 원래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WBA(세계권투협회) 밴텀급 및 Jr.페더급 세계챔피언이었던 홍수환 씨다. 한 라운드에 네 번 다운되었지만 다섯 번 일어나서 다음 라운드에 KO승으로 역전한 그의 WBA Jr.페더급 세계챔피언결정전은 아직도 명승부로 회자된다.
그렇다면 4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홍수환 씨의 근황은 어떨까? 요즘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KBC(한국권투위원회) 회장으로 우리나라의 복싱계를 책임지는가 하면 곧잘 강사로 초청돼서 강연도 한다. 더러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도 한다. 하지만 그가 탄탄대로를 걸어온 것은 아니다. 인생의 나락으로 추락하기도 수차례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는 그해 Jr.페더급 세계챔피언결정전처럼 깨어나서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또 다시 삶을 전진했다.
“엄마, 나 참피온 먹었어”
1966년 1월, 복싱선수 김기수 씨가 WBA 주니어미들급 세계챔피언을 차지했다. 대한민국은 최초의 세계챔피언이 탄생하자 열광했다. 그 풍경에 당시 고교생이었던 홍수환 씨는 재작년쯤 작고한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복싱팬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곧잘 복싱경기를 관전하곤 했었다. 그 추억의 인력은 기어이 그를 복서의 길로 인도했다.
하지만 처음에 홍수환 씨의 실력은 출중한 편이 아니었다. 아마추어 경기는 2전 2패, 프로 데뷔전도 무승부였다. 아무래도 포기를 가늠하던 순간이었다.
“야, 사내자식이 한 번은 이기고 그만둬라!”
뜻밖에도 그동안 복싱을 반대했던 어머니가 격려를 했다. 홍수환 씨는 전심전력으로 연습에 매진했다. 그리고 밴텀급에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한국챔피언 자리에 오르나 싶더니 동양챔피언 벨트도 두르고 나서, 급기야 세계챔피언 왕좌에 도전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그 세계챔피언결정전은 홍수환 씨의 도전이라기보다 초대였다. 당시 WBA 밴텀급 세계챔피언이었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놀드 테일러는 1차 방어전으로 일부러 홍수환 씨를 선택했다. 다소 수월한 상대로 평가했던 탓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때 그는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일병으로 군복무 중이었다.
따라서 홍수환 씨는 제대로 훈련할 수조차 없었고, 사소한 정보력도 못 갖췄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까지 6번이나 비행기를 갈아타고 경기장에 도착했다. 컨디션이 난조였지만 곧장 시합에 돌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1라운드부터 15라운드까지 무려 5차례나 아놀드 테일러를 다운시키더니 WBA 밴텀급 세계챔피언으로 우뚝 올라섰다. 바로 1974년 7월 3일이었다. 그날 그와 어머니의 감격 어린 통화는 유행어처럼 번졌다.
“엄마, 나 참피온 먹었어!”
“대한국민만세다, 대한국민만세야!”
4전 5기의 신화를 쏘다
WBA 밴텀급 세계챔피언으로서의 행복도 잠시 홍수환 씨는 8개월 후 2차 방어전에서 멕시코인 알폰소 자모라에게 KO로 패배한다. 절치부심한 그는 이듬해 리턴매치를 펼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전 재산을 털어 홈인 우리나라에서 경기를 주최한 만큼 여러모로 그의 타격은 엄청났다. 하지만 그는 결코 복싱을 포기할 수 없었다.
여간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링에서처럼 버티고 버티니 홍수환 씨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신설된 체급이었던 WBA Jr.페더급 초대 세계챔피언전 토너먼트 출전권을 획득한 것이다. 투혼으로 승리를 거듭한 그는 결승전까지 올랐다. 최후의 상대는 헥토르 카라스키야. 전적 11전 11승 11KO의 그는 ‘지옥에서 온 악마’로 통했다. WBA 규정상 한 라운드에 세 번 다운되면 TKO로 처리되지만, 헥토르 카라스키야 측의 돌발적인 제안으로 그들의 경기는 프리 넉 다운제로 펼쳐졌다. 그로써 4전 5기의 신화는 탄생할 수 있었다.
“명성대로 헥토르 카라스키야는 돌주먹이었고, 충격의 여파도 대단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첫 다운 이후 세 번이나 더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서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다운시키기까지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시합을 위해 새벽마다 산을 오르내리며 체력을 길렀고, 한 달 동안 도끼질하며 펀치력을 키웠습니다. 철도의 침목을 넘나들며 효과적인 스텝도 익혔습니다. 그야말로 죽도록 노력하다 보니 정신력이 본능적으로 저를 일으킨 것 같습니다.”
1977년 11월, 홍수환 씨는 4전 5기로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물리치고 WBA Jr.페더급 초대 세계챔피언으로 등극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두 체급을 석권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2차 방어전에서 고배를 마신다. 그 후, 은퇴를 고려하던 그는 라이벌 염동균 씨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복싱선수생활을 마무리지었다. 통산 50전 41승 14KO 4무 5패의 화려한 전적이었다.

알라스카의 택시드라이버
서른 살 무렵, 복싱선수생활을 매듭지은 홍수환 씨는 삶의 전환기를 맞이했다. 이제는 어엿한 사회인으로 자리매김할 시점. 하지만 인생은 의지처럼 녹록치 않았다. 방송해설자로 선정됐다가도 그냥 퇴출되는가 하면 KBC도 그에게 시비를 걸곤 했다. 아마도 WBA Jr.페더급 세계챔피언에 등극할 때 소감으로 대통령을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점점 삶이 지쳤던 그는 급기야 미국의 알라스카로 이민을 결심한다. 복싱선수 시절 영어와 일어는 이미 습득해두었다.
그렇게 홍수환 씨는 알라스카에서 택시드라이버를 직업으로 선택한다. 특유의 근성으로 5년 동안 활동했으나 연고 없이 정착하기란 아무래도 버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손님의 서류봉투를 배달한다. 그런데 서류봉투에는 마약이 숨겨져 있었다. 순식간에 경찰에 체포된 그는 차디찬 타국의 감옥에서 재판을 받기에 이른다. 우여곡절 끝에 무죄로 판명되었으나, 고생길은 여전했다. 그는 재판 중 보석금을 대납해주었던 한국교포의 식당에서 빚을 갚고자 1년 넘게 접시닦이를 했다. 그뿐인가, 이후 그는 운전으로 편도 20시간 거리의 멕시코 국경에서 노점상을 운영하기도 했다.
정말이지 타국살이의 서러움과 외로움은 한계에 도달했다. 홍수환 씨는 가까스로 우리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겨우겨우 복싱체육관을 오픈했다. 활로가 뚫리나 싶었지만 복싱체육관을 드나드는 조직폭력배들 때문에 소위 해결사로 누명마저 썼다. 지난한 법정 공방은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됐다. 무죄까지 3년이 소요됐다.
기본기와 인성, 그리고 세계챔피언
복싱의 링에서는 심판이 있지만, 세상살이에는 아무도 곁에 없는 듯했다. 쓰러지면 일으켜주기는커녕 더 짓밟았다. 하지만 홍수환 씨에게는 4전 5기의 정신력이 존재했다. 그는 쓰러진 만큼 일어섰다. 그리고 세월을 관통해서 현재의 인생길까지 묵묵히 걸어왔다. 그사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좇아오는 후배 복싱선수들도 적잖았다. 어느새 그는 삶의 경륜, 인성, 그리고 능력이 묻어나는 탁월한 지도자의 등을 갖추고 있었다.

“복싱에서 잽과 원투 스트레이트는 가장 기초적이지만, 그래서 제일 중요한 동작입니다. 끊임없이 연마해야 복싱선수로서 대성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복싱은 상대를 존중해야 자신도 성장할 수 있습니다. 존중을 거듭하면 상대의 장점도 배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본기와 인성, 두 가지를 철저하게 겸비하면 세계챔피언으로 발돋움할 수 있습니다.”
홍수환 씨는 후배 복싱선수들의 기본기와 인성을 특히 중요시한다. 말뿐이 아니라 그는 행동으로 솔선수범한다. 실제로 그는 아직도 잽과 스트레이트를 연습한다. 건강관리 일환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기본에 충실하다. 또한 틈틈이 책도 탐독해서 자기계발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곧잘 강연에 초청되는 만큼 연사로서 청중한테 예의를 지키려는 차원이다. 왠지 그의 앞날은 더욱 멋있을 듯하다.
잠시나마 홍수환 씨의 인생길을 동행할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랑 추억이 스민 복싱을 통해 세계챔피언이라는 영광을 누렸다. 복싱선수를 은퇴하곤 굴곡진 여정도 돌고 돌았지만, 그의 중심축은 여전히 복싱이었다. 그래서 모진 인생살이에도 4전 5기의 자세로 일어서서 인생을 승리할 수 있었다. 그 4전 5기를 주제로 강연도 자주했다. 아무래도 그는 복싱에 빚졌다고. 그런즉 여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복싱 전도사로 살아가겠단다. 아무렴, 여기저기 복싱도 전파하고, 세계챔피언도 육성하며 살아갈 그의 길을 응원한다.
홍수환 KBC 회장
2014.7 ~ 한국권투위원회 회장
2003 경인방송 복싱 해설위원
2002 공군사관학교 복싱 특별강사
1995 KBS 권투 해설위원
1977 대통령표창
1977 세계복싱연맹(WBA) 주니어페더급 챔피언
1974 대통령표창
1974 세계복싱연맹(WBA) 밴텀급 챔피언
1971 동양태평양복싱연맹(OPBF) 밴텀급 챔피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