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태학자로서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온 최재천 교수. 그는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로 있지만, 연구는 물론 시민단체, 학교, 연구소 등에서 강연을 하고 방송과 기고를 통해 일반인들이 과학을 쉽고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왔다.
최재천 교수는 지난 2013년 10월부터 국립생태원의 초대 원장으로 부임하며 세간에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대한민국 최초로 설립된 국립생태원의 안착을 위해 그는 사명감을 다해 3년 2개월 동안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무엇보다 최재천 교수는 학자이자 교육자이며 경영자이기도 했던 자신의 경험을 통해 생물들처럼 사람들 역시 함께 협력하고, 이해하며, 걸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삶의 질을 위한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 생태학
“요즘 들어 생태계라는 표현을 여러 분야에서 남용하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도 많이 사용하시는 걸 제가 나서서 반대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생태계라는 표현을 자주 쓰시면 좀 더 자연스러움, 흐름, 관계에 대해 상상해보실 수 있겠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겠습니다(웃음).”
제1대 국립생태원 원장의 임기를 마치고 연구실로 복귀한 최재천 교수. 공직 수행 중 지원이 없었던 연구실을 복원하느라 정신이 없는 그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기업생태계, 금융생태계, 지식생태계 등 생태계를 접목한 표현들을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재천 교수는 생태계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좋지만 그 전에 명확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생태계라는 시스템은 매우 독특합니다. 자연생태계에서는 조직적으로 시스템을 악용해 타인을 괴롭히고 착취하는 존재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늑대가 사슴을 잡아먹어도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한 마리 혹은 두 마리를 잡아먹습니다. 시스템의 근간을 뒤흔들진 않아요. 지나치게 의도적이거나 계획적인 모습들이 많이 보여서 과연 기업 환경이 자연생태계에 그대로 대응 가능한지 의문입니다. 용어를 사용하시되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하셨으면 좋겠어요.”
최재천 교수는 이어서 생태학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를 묻는 말에 대학 시절의 독서 동아리 활동이 생태학자로서의 인생을 준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독서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로마클럽이 발간한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읽었습니다. 저에겐 보고서의 내용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보고서를 읽으면서 ‘이대로 가다간 지구가 환경오염과 자원고갈을 버틸 수 없겠구나, 나에게 소중한 자연이 사라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생태학자의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인생의 방향을 잡은 최재천 교수는 세계적인 생태학자로 자리매김하며 아름다운 자연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그는 ‘생태학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답변한다.
“생태학은 인간과 인간은 물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서양에서는 퍽 비중이 있는 학문이에요. 예를 들어 서양 대학의 생물학과에 교수가 20여 명이 있다고 하면 15명 정도의 절대다수는 실험실에서 연구를 합니다. 그런데 나머지 소수는 산으로 가고 바다에 가면서 자연을 연구합니다. 그분들이 바로 생태학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수치상 약 25%에 해당하는 인원들인 거죠.”
아울러 최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생태학 교수가 있는 학교가 몇 안 된다고 언급하며 현실을 지적한다. 눈에 띄는 성과나 수익으로 이어지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 교수는 과거 4대강 사업 추진으로 인한 현재의 막심한 피해를 예로 들며 제대로 된 생태학자들이 많았다면 이 정도로 큰 피해는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생태학은 돈을 허투루 쓰지 않게 하며 결과적으로는 돈을 벌게 하는 학문이기에 선진국이 될수록 삶의 질과 관련이 있는 생태학은 점점 중요해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기업 환경 개선을 위한 두 가지 키워드, 공(共)과 여왕개미
지난 2017년 출간된 최재천 교수의 저서 『숲에서 경영을 가꾸다』는 기업의 경영 환경에 큰 울림을 줬다. 요즘 사회에서 끊임없이 이슈가 되는 갑질 논란 속에 최재천 교수가 강조하는 소통과 공감은 큰 조명을 받았다. 실제 이낙연 국무총리는 책을 읽고 SNS를 통해 ‘통렬합니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저는 ‘경영이 아니라 공영(共營)이다’라는 말을 책 후미에 썼습니다. 함께 경영하고, 공감해서 경영하자는 의미입니다. 제 연구실엔 어림잡아 30여 명의 인원이 살고 있습니다. 이것도 나름대로 작은 조직, 기업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 번도 대학원생들을 나무라거나 야단치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나 존대했고, 성인대접을 했어요. 스스로 보완하고 성장할 수 있는 성인이기 때문입니다. 다수가 일을 잘하고 있고, 사회에 나가서도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아갈 인재들입니다. 구성원들을 냉혹하게 몰아붙이는 게 과연 경영에 도움이 되는지 의문입니다. 또한 국립생태원 원장시절 CEO로서 경험을 해보니 구성원들과 생각을 같이하고, 서로가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니 조직이 원활하게 운영되었습니다. CEO의 경험이 없던 제가 제법 성공적으로 국립생태원을 이끌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최재천 교수는 공영을 강조하며 사람은 결혼하면 가정의 리더나 모임의 회장 등 누구나 크고 작은 조직에서 리더의 역할을 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최 교수는 언젠가는 맞닥뜨릴 리더로서의 역할에 대한 고민, 말도 안 되는 리더를 거부하자는 의미를 담아 작업현장과 사무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간 관리자 혹은 신입사원들을 위해 저서를 발간했다고 강조했다.
“저는 여왕개미를 이상적인 리더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유달리 창의성이 요구되는 시대를 살고 있죠. 창의성을 짓밟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잦은 번복, 지시, 간섭입니다. 여왕개미는 알만 낳습니다. 그 외 다른 부분은 전혀 관여하지 않아요. 일개미들이 알아서 일하도록 최소한의 관리만 합니다.”
최재천 교수는 무심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가 그 후, 회의 때마다 원장인 자신의 지시사항만을 직원들이 하염없이 기다리던 경험을 공유했다. 그는 이상적 리더십은 꼭 해야 할 말들만 하고 가능하면 말을 아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최 교수는 하고 싶은 말을 참는 것이 무척 힘들겠지만 적어도 창의적인 결과를 원하는 리더라면 꼭 갖춰야 할 자세라고 조언한다.
▲ 최재천 교수는 겸손과 배려의 아이콘으로 유명하다. 2016년 5월 15일 ‘우리 들꽃 포토에세이 공모전’ 시상식에서도 군림(群臨)과 공영(共榮)의 자세가 돋보인다. (사진 제공: 최재천 교수)혼자 살 수 없는 인간의 지향점, 호모 심비우스
치열했던 3년 2개월 동안의 경험 및 다양한 활동을 바탕으로 이상적인 조직과 리더십을 말하는 최재천 교수. 그의 제언은 결국 생태학의 본질인 ‘관계’에서 비롯된다. 최 교수는 삶의 모든 장소에서 사람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세상은 애초에 함께 사는 곳이기 때문에 협업과 소통이 강조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다시 생태계를 예로 들겠습니다. 자연이 풍요로우면 아무도 죽지 않습니다. 식량이 떨어지면 제일 경쟁력이 없는 몇 종이 죽는 것뿐입니다. 1등을 제외한 나머지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죠. 모든 생물은 다 짝이 있고 경쟁이 아닌 관계를 중심으로 삶을 살아갑니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배엔 미생물이 굉장히 많이 들어 있습니다. 이 미생물들을 완전히 씻어내면 건강에 엄청난 피해가 와요. 왜냐하면 미생물들이 소화작용과 면역작용을 도와주기 때문이죠. 세상은 손을 잡은 자들이 손잡지 않는 사람들을 밀어내고 사는 곳이며 관계가 중요한 곳입니다. 세상에 독불장군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최재천 교수는 마치 세상은 경쟁에서 이겨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곳인 것처럼 교육이 이뤄지는 현실을 지적한다. 최 교수의 말대로 우리는 학교 교육을 받으며 줄곧 남을 짓밟아야 올라갈 수 있는 경쟁 속에서 살아왔다. 회사라는 조직에서도 승진을 위한 경쟁 속에 소통과 협력이 이뤄지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 교수는 인간은 결코 슬기로운 인간을 말하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며 협력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심비우스’를 추구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그의 메시지는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선사한다.
“환경을 예로 들겠습니다. 미세먼지를 만든 것은 인간입니다. 플라스틱의 경우도 잘게 부서진 조각들이 물에 들어가고, 고기가 플라스틱을 먹고, 결과적으로 인간이 먹게 됩니다. 우리가 함부로 판단하고 사용해서 버린 것들이 돌고 돌아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인간은 결코 현명하지 않은 동물입니다. 지금껏 사용해왔던 현명함이라는 자화자찬은 버리고 공생해야 합니다. 호모 심비우스는 공생하고 협력하는 인간입니다. 이 세상은 누구와 손을 잡고 같이 간다고 해서 결코 내가 손해를 보거나 떨어져 나가는 곳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서도 안 되죠. 저는 생태학자로서 삶의 질이 높은 인간과 자연을 만들어나가는 데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석좌교수
주요 경력 사항
제1대 국립생태원 원장
생명다양성재단 대표
제1기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촉위원
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연구소 소장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이화여자대학교 자연사박물관 관장
이화여자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자연과학부 석좌교수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교수
서울 국제생태학회 공동위원장
미국 미시간대학교 동물학박물관 종신 객원연구원
국제학술지 Journal of Inspect behavior 편집위원회 위원
미국 미시간대학교 조교수
미국 하버드대학교 전임강사
학력 사항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생물학 박사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생물학 석사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 대학원 생태학 석사
서울대학교 동물학 학사
수상 내역
대한민국과학문화상
미국곤충학회 젊은 과학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