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세영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명예교수
독일 카셀대학교에서 직업교육학을 전공하여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한기대 테크노인력개발전문대학원 교수로서 기술인력양성, 성인학습, 재직자 능력향상 및 전문화에 중점을 두며 연구하고 강의했다. 이외에 대한공업교육학회 회장, 한국고용·HRD학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어느 생태계든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본질, 방향, 방법에서 흔들리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만난 인물이 30년을 HRD를 가르치고 연구한 임세영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명예교수다. 그는 한국 HRD 변천과 삶의 여정을 함께 했는데 그 과정에서 HRD는 무엇이며, 교수자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이고, HRD 연구자들에게 질적 연구가 왜 필요하며, 한국 HRD는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깊이 통찰해왔다. 임 교수와의 대담이 배움 그 자체였던 이유다.
엄준하 발행인:
HRD학자로서 어떤 삶의 페이지를 넘겨오셨는지 듣고 싶다.
임세영 교수:
30년을 쪼개보면 처음 10년은 기술인력 양성에 중점을 뒀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의 행적이다. 나머지 20년은 한국기술교육대학교 HRD 전문대학원 출범과 맞춰 성인학습, 재직자 능력향상 및 전문화에 역점을 뒀다.
엄준하 발행인:
가르치고 연구하는 삶에서 얻으신 통찰도 엿보고 싶다.
임세영 교수:
먼저 ‘HRD는 무엇인가’인데 HRD는 사람의 ‘일하는 능력’을 발굴, 양성, 향상, 전문화하는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활동이다. HRD 생태계가 발전하려면 능력을 지닌 ‘개인’, 개인에게 능력과 관련된 일을 부여하는 ‘조직’, 조직보다 큰 규모에서 환경과 제도를 조성해주는 ‘국가’의 역할이 적절히 어우러져야 하는 이유다. 다음은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다. 처음엔 거시적인 제도와 정책에 관심이 있었는데 90년대 중반을 지나며 인간 개인의 학습과 학습 촉진이라는 미시적 주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 계기는 칼 로저스의 저서 『학습의 자유』였는데 그는 인간 행동의 계획적 변화를 추구하는 교육은 불가능하며 존재하지 않고, 교수자는 인간의 학습을 도울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로 이어졌다. 수업 방식을 티칭에서 퍼실리테이션으로 바꿨고, 질적 연구에 집중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학습자 중심 교육을 구현하려고 다사다난한 날들을 보냈다(웃음).
▲ 임세영 교수가 교수로서 어떤 방향성에 따라 가르치고 연구해왔는지 풀어내고 있다.엄준하 발행인:
한기대, 나아가 한국 HRD 발전 여정도 짚어달라.
임세영 교수:
2000년 3월 한기대 대학원에 HRD학과가 설치됐고 첫 석사과정 학생들을 모집했다. 2003년에는 우리나라에 전문대학원 제도가 처음 도입됐는데 그때 일반대학원에 있던 인력개발학과를 HRD전문대학원으로 확대 개편했다. 마침 작년 전문대학원 창립 20주년 기념식을 열었는데 한국 HRD 판이 커졌고, 전문성도 깊어졌고, 사회적 위상이 높아졌음을 실감했다. 한국 HRD 흐름도 짚어보면 1950년대-1960년대에는 집체훈련기관, 1970년대는 사업 내 훈련기관 중심이었고, 1980년대-1990년대는 국가가 고도성장하며 기업들이 너도나도 연수원을 설립했다. 1990년대 후반 IMF, 2000년대 후반 미국發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는 연수 프로그램과 전문가 아웃소싱이 많아졌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큰 위기다.
엄준하 발행인:
거대한 위기에 한국 HRD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임세영 교수:
한기대의 경우 HRD 분야 교육 연수 및 컨설팅 수요에 대처할 전문가가 되려는 이들의 요구를 반영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대응했다. 나아가 거시적 관점에서 제언하면 먼저 한국 HRD의 역사를 ‘행위 주체(행위자)’ 중심으로 읽어봐야 한다. 1960년대-1980년대 국가 중심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인력개발 5개년 계획, 1990년대-2010년대 기업 중심 재직자 역량향상 몰두, 2010년대 이후 기업의 HRD 투자 위축과 함께 팽배해진 개인의 자기주도적 가치 실현과 능력개발이 대표적이다. 이런 궤적으로 인해 국가 차원의 성인 재직자 및 구직자 지원 강화와 서비스 전달체계 확립, 기업의 학습휴가제 확대와 노동시간 단축 및 질 높은 온·오프라인 학습 기회 부여 등이 과제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교훈은 아무것도 하지않으면 미래를 포기하게 된다는 점이다. 모든 위기는 사람에서 비롯되며, 모든 기회도 사람이 만든다. 그러니 사람, 조직, 국가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때 좋은 여건 조성과 좋은 흐름 촉진은 HRD의 존재 이유다.
▲ 임세영 교수(좌측)와 엄준하 발행인(우측)은 한국 HRD 생태계 변천, HRD전문대학원이 있는 한국기술교육대학교의 역할, HRD 연구자에게 질적 연구가 갖는 의미 등을 중심으로 HRD의 본질, 방향, 방법에 관한 대담을 나눴다.엄준하 발행인:
HRD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말씀을 주셨다. 관련해서 HRD 연구자들에게 질적 연구가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임세영 교수:
질적 연구는 실생활 경험으로부터 본질을 찾아가며 ‘나의 지식’을 만드는 작업이다. 반면 양적 연구는 이미 확립된 이론을 확장·심화하기 위한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검증할 수 있는 조사분석을 통해 지식을 확장해 간다. 제가 HRD 연구자들에게 질적 연구를 강조하고 가르친 이유는 외국의 HRD 이론과 체계에 의존하면 한국의 HRD 현실을 설명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한국의 HRD 연구자들이라면 우리 고유의 문화, 인간관계, 언어생활을 기반으로 HRD 현상을 탐구하고 기술해야 의미와 보람이 있지 않겠는가. 유관해서 저는 작년 9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가서 직업 기술교사들의 교육과정 역량 향상을 위한 연수를 2주간 시행했다. 이때 경험으로 자문화기술지 연구 논문을 저술해서 성인계속교육학회지에 발표도 했다. 특히 처음 밟는 땅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무엇을 함께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지 고민하고, 연구하고, 성찰하고, 기록한 경험은 숫자로 표현할 수 없다. 이는 질적 연구가 학자들에게, 나아가 HRD 생태계 발전에 꼭 필요한 ‘철학'을 심어주는 이유기도 하다.
엄준하 발행인:
마지막으로 HRD 후배들을 위한 말씀을 전해달라.
임세영 교수:
AI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HRD 人들이 네트워크를 구축해서 함께 배우고, 리더십을 발휘하며 성숙한 조직을 만들고, 성찰을 통해 지식을 창조하며 HRD의 학문적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헤르만 헤세의 ‘인생이란 자기가 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말, 매슬로우가 남긴 ‘최고 수준의 행복은 자기실현’이라는 말을 기억해달라. 연장선에서 다음의 질문으로 제언을 마치겠다. HRD의 역할과 비전은 실용적이고 환금성 있는 역량을 넘어 인간이 지닌 내면적 힘을 길러 전문성을 갈고 닦는 동시에 행복하게 자신이 되어가는 길을 가는 사람이 되는 것을 돕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