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귀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서울대 심리학과에서 학사/석사학위를, 미국 미주리주립대학에서 상담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퍼듀대학 교육학과 교수, 한국상담심리학회 학회장,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장 및 언어연구교육원 부원장 등을 역임했다. 완벽주의, 미루기, 자기 효능감 등을 연구하고 있으며, 방송과 저서를 통해서도 많은 사람에게 심리학적 통찰을 전해주고 있다.
‘저 사람은 대체 왜 저럴까.’ 다양한 세대가 모여 일하는 기업에서 반드시 이해하고, 나아가선 해답을 찾아내야 하는 질문이다.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은 나날이 커지고 있고, AI는 기존의 여러 직무를 대체하고 있고, 세대 변화가 빨라지고 있는 기업에서 구성원들의 일에 대한 권태, 번아웃되는 소진, 서로 간의 불신과 같은 이슈를 해결할 시작점인 까닭이다. 이렇게 조직문화에 빨간불이 켜진 현실을 보며 『월간HRD』는 완벽주의, 미루기, 자기효능감 등을 연구하는 이동귀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와 대담을 나눠봤다. 그동안 쌓은 심리학적 지식을 대중은 물론 기업과도 공유하고 있는 그는 여러 질문에 막힘 없이 답하며 왜 완벽보다 실행이며, AI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통찰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줬다.
엄준하 발행인:
대한민국 성인들의 감정 건강 변천과 현황은 어떤지 말씀해달라.
이동귀 교수:
대한민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가족, 친지, 정情, 충忠, 효孝 등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의 연결’이 강점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IMF 이후 많은 사람이 많은 것을 잃으며 실의에 빠지며 주변을 돌아볼 수 없게 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는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중요한 심리적 안전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궤적을 밟으면서는 중요한 가치를 많이 잃어버렸는데 몇 가지 사례를 통해 말씀드리면 출근 시간대에 미국과 한국의 커피전문점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고 직원과 손님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미국은 누군가가 그들에게 가서 ‘다른 곳에 가서 대화하며 해결하는 게 좋겠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한국은 괜히 끼어들었다가 기분만 상할 수 있으니 대체로 개입하지 않거나 사이렌 오더로 바꾼다. 그리고 1/N이 일상화가 됐는데 회사의 경우 구성원들 각자의 1/N을 합한 것 이상의 성과를 내야 하는 곳이라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자율출근제를 시행한 회사를 보면 누구는 일찍 나와서 일찍 퇴근하고, 누구는 늦게 나와서 늦게 퇴근한다. 이런 경우 각자의 생산성은 높겠지만 원활한 협업을 기대할 수 없고, 회사가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려고 하면 공정성 이슈가 발생한다. 모두가 손해 보는 것을 원치 않고, 그렇기에 타인의 상황에 관여하지 않는 문화가 만든 모습들이다.
엄준하 발행인:
회사로 범위를 좁혀서 많은 대한민국 직장인에게 내재되어 있는 완벽주의의 빛과 그림자는 무엇인지 듣고 싶다.
이동귀 교수:
완벽주의는 성과를 중시하는 우리 기업들에서 돋보였던 가치다. 개인적으로 성장 동력으로의 완벽주의는 긍정적이라고 보는데 꼼꼼함과 세밀함을 요구하는 만큼 실수를 줄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완벽하게 일하려고 하다 보니 부담을 느끼며 시작 자체를 못할 때가 있다. 실수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의 그림자다. 여기에 죄책감과 자책감이 더해지면 우울증이 생기고 심각할 경우 자살로 이어진다. 뛰어난 인재들 중에 자살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완벽주의는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주변의 영향을 받으며 내재화되는 것이다. 실제로 겉은 완벽주의자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성과를 중시하는 우리 기업들에서 돋보였던 가치인 완벽주의는
꼼꼼함과 세밀함을 요구하는 만큼 실수를 줄여주지만
실수와 실패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로 변모할 경우
구성원들이 부담감을 넘어 죄책감에 시달리게 만들 수 있다."
엄준하 발행인:
그래서 ‘완벽보다 실행’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것인가.
이동귀 교수:
맞다. 구체적으로는 서로 연관성 높은 두 가지를 강조한다. 하나는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때 세 가지 이상 만들지 마라’다. 미국 대통령들의 연설문을 보면 중요 포인트가 세 개이며, 삼진아웃이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세 가지 중요 포인트는 잘 본다. 다른 하나는 ‘70%의 룰’이다. 처음부터 100%를 기대하면 부담이 너무 크다. CEO들의 경우 계획을 세울 때 30% 정도는 여지를 둔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여러 권의 책을 쓰지만 어떤 사람은 한 권의 책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100% 혹은 120%의 역량을 담은 책을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특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70%를 목표로 하는 것이 결코 나약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완벽주의에 매몰되어 시작하지도 못하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추가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것도 말씀드리면 자기 비난이다. 자기 비난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자신의 가능성을 깎는 행위다. 자기 비난을 계속하면 에너지가 떨어져서 우울해지고 일이 잘 진행될 수 없다.
엄준하 발행인:
완벽주의라고 하면 따라다니는 미루기의 원인과 해결 방안도 묻고 싶다.
이동귀 교수:
일을 미루는 원인은 게을러서도, 의지박약도, 시간관리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해서다. 어떤 일을 시작하려고 하면 불안감이 생기고, 그러면 뇌에서 위기를 느끼며 편도체가 활성화되어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시험 전날 만화책을 보거나 유튜브의 여러 영상을 보거나 하는 등이 대표 사례인데 단맛을 느끼게 하고 위안도 얻게 하는 행위들이다. 그러나 조심하셔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마지막 순간에 몰아쳐서 일하면 심장과 혈관에 좋지 않다. 미루기를 해결할 방안으로 넘어가면 일을 미루는 자신을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미루는 사람을 보며 게으른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을 멈춰야 한다. 일을 미루는 사람은 그 일을 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으나 잘하고 싶은 마음에 부담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게으른 성격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엄준하 발행인:
회사에서 일을 미루는 사람은 어떻게 다독이고 관리해줘야 하겠는가.
이동귀 교수:
제가 늘 밀고 있는 얘기로 답변드리겠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어떤 일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5분 안에 그 일을 하고, 15분간은 지속하게 해야 한다. 말씀드린 것을 습관으로 만들면 시동이 걸려서 1시간도 더 할 수 있다. 참고로 많은 분들이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고 옛날에는 그렇게 가르쳤다. 하지만 저는 행동을 바꿔야 생각이 바뀐다고 본다. 온갖 감정이 뒤섞이면 행동하지 못한다. 행동해야 피드백이 오기 때문에 다른 행동도 해볼 수 있고 자기 효능감도 높일 수 있다. 그리고 계획을 세우는 데 너무 많은 힘을 들이는 분들이 있는데 이런 경우 힘이 떨어져서 정작 더 중요한 실행을 하지 못한다. 그러니 40% 정도 계획을 세웠다면 실행하시길 바란다. 그리고 일하다가 잠깐씩 남는 시간인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도 기억하시길 바란다.
▲ 엄준하 발행인(좌측)과 이동귀 교수(우측)가 일터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 ‘일을 미루는 사람’은 어떤 이유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지 보이는지, 그 사람을 어떻게 다독이고 관리해줘야 하는지에 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엄준하 발행인:
기업에서 구성원들의 실행력을 높이고자 할 때 어떤 프로세스와 콘텐츠를 바탕으로 교육을 개발해서 시행하면 효과적이겠는가.
이동귀 교수:
실행력뿐만 아니라 어떤 주제를 다루든 학습자들의 동의를 얻는 다음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 경우 강의를 나가는 기업의 구성원들로부터 다양한 질문을 받은 뒤, 이를 몇 개의 키워드로 묶어 파트를 나눈 뒤 강의를 구성했는데 반응이 매우 좋았고 저 역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요즘 젊은 세대는 세뇌교육 방식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니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는 것보다 간접적인 메시지를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누군가에게 기여하고 싶어 한다. 따라서 개방성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콘텐츠의 경우 번아웃, 권태감, 소진, 불신 등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모두 조직문화 영역에서 핫한 이슈들인데 앞으로 무엇을 해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지 방향이 잡히지 않아 스트레스가 심하고 에너지도 떨어지고 실행력도 낮아진 직장인들의 심리에서 비롯됐다.
엄준하 발행인:
미래를 걱정하는 직장인들의 심리에는 AI가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 같다.
이동귀 교수:
바로 보셨다. 관련해서 제가 수행한 연구에서는 ‘AI 활용에 대한 자기 효능감’이 높을수록 조직이 부과하는 완벽주의로 인한 압박감이 완화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니 기업은 구성원들에게 AI가 어떻게 경험되고 있는지, 구성원들의 AI 활용력을 높여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고민해봐야 하며, AI에게 무엇을 시키고 인간은 무엇을 해야 이로운지 통찰해봐야 한다.
엄준하 발행인:
교수님께서 본인의 역량과 경력을 개발해온 여정도 궁금하다.
이동귀 교수:
연세대학교에 온 지 20년이 되었는데 전반 10년과 후반 10년이 달랐다. 전반 10년은 연구, 교육, 학회 활동에 충실했는데 그러다가 기존의 상식, 개념, 성공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너무 연구실과 실험실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고, 일반 사람들과의 소통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심리학과 사회의 교량 역할’을 미션으로 잡으며 후반 10년을 시작했고 방침에 맞게 책을 썼고 방송과 강연에 나섰다. 관련해서 귀중했던 경험들을 공유하면 국내 모 방송사에서 3년 동안 일주일에 15분씩 교양 방송을 한 적이 있는데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시청자들과 교류하며 소통력을 기를 수 있었고, 질문에 답하기 위해 연구하면서 전문성도 더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제 책이 대만에서 반응이 좋아 대만의 모 온라인 업체 플랫폼에서 내보낼 강의를 찍은 적이 있는데 기존의 콘텐츠보다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발전할 수 있었다. 또한, 저는 많은 사람이 찾는 존재가 되려면 ‘나만의 브랜드’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완벽주의, 미루기, 자기 효능감 등의 분야를 열심히 연구해왔다. 참고로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제게 중요한 키워드는 ‘동기(motivation)’부여다. 상담을 통해 우울한 사람들,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고 은둔과 고립도 사회적으로 큰 문제인데 말씀드린 부정적인 현실을 플러스 방향으로 돌리려면 동기부여를 통한 소통과 공감이 필요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에게 의미가 있는
일을 해야 가치를 느끼고
에너지도 생기며 성과도 좋다.
그래서 자기 인식이 중요하며,
현실이 된 AI 시대를 살면서는
AI라는 말에 올라탄 다음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통찰하며
인간 고유의 역량을 개발해야 한다."
엄준하 발행인:
마지막으로 후회 없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어떤 인생전략을 세우면 좋을지에 관한 통찰을 공유해달라.
이동귀 교수:
결국 사람은 자기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해야 가치를 느끼고 에너지도 생기며 성과도 좋다. 그러니 자기 인식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전 생애적 관점에서 내가 지금 어디까지 와 있고, 어디로 가고 싶은지 중간중간 점검해봐야 한다. 또 마이너스를 줄이는 것보다 플러스를 늘리는 쪽으로 생각을 많이 하시면 좋겠다. 아울러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다. 행복도 전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닫고,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커뮤니티를 맺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AI 시대와 관련한 제 관점을 덧붙이면, 인간이 AI와 속도나 효율성으로 경쟁하는 것은 애초에 의미 있는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어령 선생님도 인간이 말보다 빨리 달릴 수 없기에 둘의 속도를 겨루는 것은 무의미하며, 대신 인간은 말에 올라타서 어디로 달릴지 방향을 정하는 존재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여기에서 말을 AI로 대체하면 앞으로 인간역량개발의 방향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것은 다양한 맥락 속에서 사람이 만든 AI를 통해 삶과 일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통찰하고 결국에는 인간 고유의, 그리고 나만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