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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05-20 09:04:05
  • 수정 2026-05-20 09: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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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되면 많은 회사가 가족의 달 이벤트를 고민한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연휴가 이어지니 자녀 초청 행사, 부모님 감사 선물, 사내 캠페인 같은 아이디어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그런데 구성원이 오래 기억하는 것은 행사 자체가 아니다. 아이 행사 때문에 반차를 쓰겠다고 했을 때 팀장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부모 병원 일정으로 시간을 조정해야 할 때 회사가 얼마나 쉽게 허락했는지, 그런 장면이 더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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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DBR은 돌봄을 직원 개인의 사적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인적 지속가능성과 인재 유지에 직결된 경영 사안으로 다뤘다. 기업이 돌봄 부담을 덜어주는 제도와 문화를 마련하지 않으면 생산성 저하, 이직, 간병 퇴직 같은 비용으로 돌아온다는 지적이다.


​나는 첫 직장에서 그 사실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배웠다. 5월 5일이 되면 A운동장이라고 불리던 축구장에는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놀이기구와 물놀이 시설이 들어서고, 구성원 자녀들이 부모가 일하는 회사에 놀러 왔다. 평소에는 출입이 통제되던 일터가 그날만큼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에게 그날의 회사는 엄마 아빠의 세계를 처음 눈으로 확인하는 장소였다.


어버이날 즈음에는 부모님을 모시고 조선소를 둘러보는 행사도 있었다. 멀리 거제까지 오신 부모님은 회사 곳곳을 둘러보고, 식사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조선소의 거대한 규모에 놀라기도 하고, 이런 곳에서 자기 자녀가 일한다는 사실에 뿌듯해하시기도 했다. 그 자리는 회사 소개 행사라기보다, 부모에게는 안도감을, 직원에게는 자부심을 주는 시간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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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순간도 비슷했다. 첫 직장에 합격한 뒤 회사가 집으로 꽃바구니를 보내준 적이 있다. “지금까지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회사가 잘 키우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모님은 무척 기뻐하셨고, 주변에는 그 꽃바구니 사진을 프로필로 걸어 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지금 보면 다소 옛 기업문화처럼 보이지만, 그 장면 역시 입사를 개인의 취업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맞는 직원경험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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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아니지만 비슷한 경험도 있다. 삼성그룹 신입입문교육 시절, 흔히 BP라고 부르던 이벤트가 있었다. 지도선배들은 생일을 맞은 신입사원을 위해 깜짝 축하를 준비했고, 부모님 인터뷰 영상을 확보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 교육생들이 울컥하는 장면도 자주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교육 기간 내내 꽤 엄하게 대했던 신입사원 한 명이 있었는데, 화면 속 부모님이 회사 전무님이어서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5월 행사는 지금 기준으로 꽤 단순했다. 가족의 모습도, 참여 방식도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이유는 분명하다. 회사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구성원을 직무와 성과로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뒤에 가족이 있고, 관계가 있고, 회사 밖의 삶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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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가족을 회사 안으로 초대하는 방식이 감동을 만들었다면, 지금은 구성원이 자기 삶을 굳이 숨기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를 만드는 쪽이 더 중요하다. 아이 행사 때문에 시간을 조정해야 할 때, 부모 병원 일정으로 반차를 써야 할 때, 집안의 돌봄 문제로 하루 일정이 흔들릴 때, 조직이 어떤 말과 표정을 보이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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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5월 행사 기획의 취향 문제가 아니다. DBR은 돌봄을 공동체 유지에 필요한 사회적 재생산 인프라이자 기업의 인적 지속가능성과 연결된 문제로 본다. 또 일본 기업들이 부모 간병을 병행하는 직원을 위해 별도의 유급휴가를 주거나, 간병 사유 재택근무 제한을 없애고, 간병 상담소를 운영하고, 관리자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소개한다. 돌봄은 ‘좋은 일 하면 좋은 일’ 수준의 복지가 아니라, 핵심 인력 유지와 조직 운영의 문제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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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5월에는 행사 아이디어보다 먼저 몇 가지를 점검해야 한다. 우리 조직은 구성원이 가족이나 돌봄 관련 사유를 편하게 말할 수 있는지, 팀장은 일정 조정을 배려의 문제로 보는지, 성실성의 문제로 보는지, 5월의 공지문과 캠페인은 누구를 자연스럽게 포함하고, 누구를 조용히 밀어내고 있는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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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전시하지 말고, 삶의 사정을 가볍게 여기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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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라고 해서 모든 구성원이 가족이라는 단어에 같은 감정을 갖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단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부담스럽고 불편한 단어일 수 있다. 기혼 여부, 자녀 유무, 부모와의 관계, 돌봄의 방식은 모두 다르다. 그런데 조직이 무심코 한 가지 가족 모습만 기본값처럼 제시하는 순간, 좋은 뜻으로 만든 행사도 누군가에게는 배제의 경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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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표현부터 달라져야 한다. “가족의 달을 맞아 구성원 가족 모두의 행복을 바랍니다”라는 문장은 익숙하지만, 지금의 조직에는 다소 좁다. 오히려 “당신의 삶을 이루는 소중한 관계와 시간을 응원합니다”라고 쓰는 편이 훨씬 많은 사람을 자연스럽게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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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보다 먼저 드러나는 것은 팀장의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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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회사에는 이미 반차, 연차, 유연근무 같은 제도가 있다. 문제는 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쓸 때 눈치를 보게 만든다는 데 있다. 특히 5월에는 이런 장면이 더 자주 생긴다. 아이 행사, 부모 병원 일정, 집안의 돌봄 이슈, 연휴 전후 일정 조정. 이때 조직문화는 취업규칙보다 팀장의 반응에서 먼저 드러난다.


“다녀오세요” 한마디면 끝날 일을 길게 설명하게 만드는 조직이 있다. 일정 조정을 성실성 부족으로 읽는 리더도 있다. 이런 경험이 몇 번만 반복돼도 제도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5월에 HRD가 해야 할 일은 거창한 교육보다 짧고 선명한 리더 가이드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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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관련 일정 조정 요청을 과도하게 설명하게 만들지 말 것.

- 돌봄 이슈를 업무 몰입 부족으로 단정하지 말 것.

- 배려를 특혜처럼 보이게 하지 말 것.

- 구성원의 사생활을 농담 소재로 다루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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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프로그램은 사진보다 기억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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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를 하더라도 결국 중요한 것은 보여주기가 아니다. 좋은 5월 프로그램은 행사 사진보다 “이 회사는 내 사정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구나”라는 인상을 남긴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볼 때는 콘텐츠보다 참여 구조를 먼저 봐야 한다. 공개적인 가족 소개를 유도하고 있지는 않은가. 기혼자나 부모만 자연스럽게 중심에 놓이고 있지는 않은가.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조용히 소외되도록 설계돼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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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자녀 초청 행사를 하더라도 “아이와 함께 오는 구성원”만 주인공이 되지 않게 설계할 수 있다. 어버이날 캠페인도 “부모님께 감사편지 쓰기”처럼 관계를 하나로 고정하는 방식보다 “내 삶을 지지해준 사람에게 마음 전하기”처럼 열어두는 편이 낫다. 선물이나 포인트를 주더라도 “가족을 위해 사용하세요”보다는 “소중한 사람과 시간을 보내는 데 활용하세요”가 훨씬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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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프로그램보다 문장을 먼저 봐야 하는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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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문화는 제도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공지문, 캠페인 문구, 리더 코멘트, 사내 게시글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표현이 문화를 만든다. 특히 5월에는 이 문장들이 더 도드라진다. 누구를 상상하며 쓴 문장인지, 어떤 삶을 기본값으로 두고 있는지, 누가 그 문장 앞에서 한 번 머뭇거리게 되는지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직문화 담당자는 5월만큼은 프로그램 기획자이기 전에 편집자처럼 움직일 필요가 있다. “가족”이라는 단어를 쓸 때 우리는 누구를 떠올리고 있는지. “배려”라는 말을 쓸 때 왜 어떤 사람은 오히려 눈치를 볼수도 있을지. “감사” 캠페인은 왜 누군가에게는 감동이 아니라 부담이 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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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M, HRD, 조직문화 담당자는 5월에 무엇을 다르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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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RM의 역할은 제도를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제도가 실제로 쓰이게 만드는 데 있다. 5월에는 자녀 행사, 병원 동행, 돌봄 일정처럼 짧지만 민감한 사유가 자주 생긴다. 이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복지보다 “편하게 써도 된다”는 신호다. 이미 운영 중인 반차, 연차, 유연근무를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짧게 정리해주고, 사유를 과도하게 증명하게 하지 않는 원칙을 분명히 하는 것만으로도 체감은 꽤 달라진다.


HRD의 역할은 리더의 설명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반응을 바꾸는 데 있다. 좋은 리더십 교육은 대단한 강의보다 짧고 정확한 가이드에서 시작될 때가 많다. 5월에는 팀장에게 “구성원의 삶과 업무가 충돌하는 순간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편이 훨씬 실용적이다. 일정 조정 요청을 받았을 때 대체 인력을 함께 고민할 것, 사적인 사정을 공개적으로 묻지 말 것, 업무 공백보다 신뢰 손실이 더 큰 문제일 수 있음을 알릴 것. 이런 내용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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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문화 담당자의 역할은 행사 기획보다 참여 설계를 먼저 보는 데 있다. 무엇을 할지보다 어떻게 참여시키고 어떤 느낌을 남길지를 먼저 봐야 한다. 가족사진 공모전처럼 개인사를 공개하게 만드는 방식은 조심해야 한다. 반대로 감사 메시지 카드, 익명 응원 문구, “고마운 사람에게 한 문장 보내기” 같은 콘텐츠는 참여 장벽이 낮고 해석의 폭이 넓다. 지금의 5월에는 이런 장치가 더 잘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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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말아야 할 것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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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라고 해서 기혼자와 유자녀 직원만 중심에 놓는 이벤트를 반복하면 조직은 빠르게 낡아 보인다. “부모님께 꼭 전화하세요”처럼 특정 관계를 강하게 전제하는 문구도 조심해야 한다. 가족사진 제출, 가족관계 소개, 감동 사연 공모처럼 사적인 영역을 조직이 과하게 끌어오는 방식도 피하는 편이 낫다. 감동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감동을 강요하면 대체로 역효과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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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남는 것은 행사 사진이 아니라 한 번의 반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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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정말 보여주는 것은 행사 규모가 아니다. 아이 행사 날 반차를 쓰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부모 병원에 다녀오겠다는 말에 어떤 표정을 짓는지, 바로 그런 장면에서 조직문화는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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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내 가족을 굳이 불러들이지 않아도 된다. 대신 내 삶을 함부로 단순화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누구를 돌보는지, 어떤 사정 속에서 일하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존중은 받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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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조직문화 담당자가 해야 할 일도 결국 같다. 행사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조직이 구성원의 삶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분명히 드러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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