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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6-10-07 18:3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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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터넷에서 'AI가 당신을 대체하기까지, 몇 년 남았을까요?'라는 직업 테스트를 무심코 해봤다가 멍해졌다. 결과 화면에 뜬 내 직업, 기업교육담당자의 남은 유효 수명은 고작 '5년'. 심지어 우리가 매번 교육장에 모셔오던 기업교육강사는 '3년'이 남았다고 적혀 있었다. 재미 삼아 해본 테스트였지만, 순간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설마 교육담당자가 사라지겠어? 사람을 키우고 동기부여를 하는 일인데." 머리로는 그렇게 반박하면서도, 사실 마음 밑바닥에선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숫자가 결코 허무맹랑한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사내에서 AI 도입에 가장 열심이었던 건 우리였다. 생성형 AI 열풍이 불기 시작했을 때, 새로운 툴이 나올 때마다 밤새 프롬프트를 연구하고 임직원들을 불러 모아 "이제 AI를 모르면 도태된다"며 앞장서서 실습을 이끌었다. 강의실 뒤편에서 버벅대는 직원들의 오류를 잡아주고, 사내 혁신의 최전선에 서 있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AI를 전파하고 내 자리로 돌아와 앉았을 때,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내가 전파한 그 기술의 칼날이 가장 먼저 겨누고 있는 곳이 바로 내 책상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었다.


솔직히 교육담당자라면 다들 한 번쯤 속으로 느껴봤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가 야근해가며 매달렸던 일의 상당수가 얼마나 허무하게 대체되고 있는지 말이다. 몇 날 며칠을 끙끙대며 짜던 교육 커리큘럼은 AI에게 프롬프트 몇 줄 넣으니 30초 만에 완벽한 시간표로 뽑혀 나온다. 강사 추천 리스트를 추리고, 교재 목차를 다듬고, 교육이 끝난 뒤 수백 장의 설문지를 붙잡고 주관식 피드백을 감성 분석해 결과 보고서를 쓰던 그 지루했던 시간들이 지금은 단 몇 분이면 끝난다. 출석 체크와 명찰 자동 제작, 만족도 취합 같은 운영 업무마저 자동화 도구가 완벽히 대신한다. 과거에 '교육담당자의 꼼꼼함'이라 포장했던 물리적 노동의 8할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린 것이다.


더 무서운 건 3년 남았다는 강사와 5년 남았다는 교육담당자 사이의 현실이다. 지식을 정리해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강의는 이미 유튜브와 사내 AI가 훨씬 더 싸고 정확하게 해낸다. 모르는 게 생겼을 때 교육팀의 특강을 기다리거나 사수에게 묻던 주니어들은 이제 모니터 속 AI 창과 실시간으로 대화하며 혼자 과제를 끝낸다. 팀장들은 "팀원들이 질문을 안 하니 가르칠 게 없다"며 쓸쓸해하고, 아마 머지않아 경영진도 "요즘은 AI로 다 배운다는데 굳이 돈 들여 집합 교육을 열어야 하냐"고 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습의 외주화와 자동화' 속에서 강의실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하던 전통적인 교육의 설 자리는 이미 사라지고 있다.


테스트 결과가 예고한 '남은 5년'은 결국 우리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가 여전히 강사를 섭외하고, 교육장에 현수막을 걸고, 다과를 세팅하며 교재를 나눠주는 ‘행사 대행 오퍼레이터’에 머물러 있다면 정말 5년도 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직원들이 강의실에 오지 않아도 필요한 것을 즉시 찾아보는 시대에, 사람들을 한곳에 가둬두고 억지로 앉혀놓는 집합 교육의 틀을 고집하는 HRD는 조직 내 비용 절감 1순위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우리 손으로 ‘강의실 안의 교육’을 깨부숴야 한다. 가장 먼저 AI를 외쳤던 우리가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은, 지식을 포장해 배달하는 중간 유통업자 역할을 과감히 집어던지는 것이다. 현업 부서장이 "우리 팀 애들 기획력이 엉망이니 기획서 특강 좀 잡아달라"고 찾아왔을 때, 냉큼 강사 프로필을 뒤적이는 대신 "팀장님, 이건 강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피드백 방식과 부서 내 템플릿 부재가 문제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컨설턴트가 되어야 한다. 때로는 불필요한 집합 교육을 스스로 없애버리고, 직원들이 일하는 메신저와 협업 툴, 일상의 업무 흐름 속에서 지식과 피드백이 자연스럽게 오가도록 판을 짜주는 ‘러닝 아키텍트’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


AI가 결코 넘볼 수 없는 인간 HRD의 진짜 영역은 바로 여기에 있다. AI는 가장 그럴듯한 100점짜리 커리큘럼을 짜줄 수는 있어도, 우리 회사 조직의 진짜 병목이 어디서 발생하는지, 부서 간에 어떤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막혀 협업이 멈췄는지는 스스로 진단해 내지 못한다. 강의장에서 들은 멋진 이론이 현업의 현실에 부딪혀 휘발되지 않도록, 배운 내용이 실제 비즈니스 성과로 이어지게 만드는 ‘학습 전이’의 판을 까는 일 역시 알고리즘이 대신해 줄 수 없다. 사내 커뮤니티(CoP)를 활성화해 고수들의 암묵지를 나누게 하고, 사수와 부사수를 잇는 멘토링의 접점을 다듬으며, 현업의 성공 사례를 표준 업무 매뉴얼로 자산화하는 일. 이렇게 사람과 조직의 구조를 엮어 실질적인 행동 변화를 만들어내는 일이야말로 오직 발로 뛰는 인간 교육담당자만이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몫이다.


'5년 남은 직업'이라는 서늘한 경고 앞에서 주눅 들 필요는 없다. 그 테스트가 사형선고를 내린 대상은 '교육이라는 행사를 대행하던 과거의 우리'일 뿐이다. 사내에서 가장 먼저 AI를 쥐었던 우리가 그 변화의 파도에 가장 먼저 휩쓸려 사라지지 않으려면, 이제 강의장 뒤편에서 조명을 끄고 서성이던 발걸음을 돌려 비즈니스의 가장 치열한 현장 속으로 깊숙이 걸어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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